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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벗 벗소식

하늘땅물벗 모임 길잡이(2)

주님, 당신의 업적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모든 것을 당신 슬기로 이루시어 세상이 당신의

조물들로 가득합니다. 당신의 숨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24.30)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 –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

 

  1. 교회에 다니면 기도나 하지 환경 문제나 사회 문제에는 왜 관여하느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그럴 때 어떻게 답했습니까? 또는 어떻게 답하면 좋겠습니까?

  1. 생태 문제는 어떻게 해서 정의의 문제와 연관될까요?
  2. 오늘 읽은 내용 중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 있으면 나누어 봅시다.

 

– 개인별 실천: 예) 환경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과 대화 나누기

– 공동 실천: 예)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피케팅에 참여하기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온 세계에 계시며

가장 작은 피조물 안에 계시나이다.

하느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온유로 감싸 안으시며

저희에게 사랑의 힘을 부어 주시어

저희가 생명과 아름다움을 보살피게 하소서.

또한 저희가 평화로 넘쳐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하소서.

 

오,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저희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소중한 이들,

이 지구의 버림받고 잊힌 이들을 구하게 하소서.

저희 삶을 치유해 주시어

저희가 이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

가난한 이들과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이득만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

저희가 하느님의 영원한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모든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경외로 가득 차 바라보며

모든 피조물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도록

저희를 가르쳐 주소서.

하느님, 날마다 저희와 함께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비오니,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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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 2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1990년 1월 1일)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 –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

목차 서론(1~2항)

I.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3~5항)

II. 생태계의 위기, 도덕 문제(6~7항)

III. 해결책의 모색(8~9)

IV. 새로운 연대의 절박한 요구(10~14)

V.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15~16)

 

III. 해결책의 모색

8. 신학, 철학과 과학은 모두 우주의 조화, 그 자체의 완전성과 그 자체 내부의 역동적 균형을 갖춘 ‘코스모스’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질서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인류는 이러한 질서를 탐구하고, 정당한 주의로써 이를 검증하며, 그 완전성을 수호하는 가운데 이를 활용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지구는 궁극적으로 공동유산이며 그 소산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이용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사목 헌장, 69항) 이것은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이 문제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소수의 특권층이 계속하여 과도한 재화를 축적해 가고 유용한 자원을 탕진하고 있는 데 반하여 대다수의 민중들이 바로 생존의 최저 수준이라는 비참한 처지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불의입니다. 오늘날 생태계의 붕괴라는 이 비극적인 징조는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탐욕과 이기심이 창조의 질서, 상호 의존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창조 질서와 얼마나 상반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9. 우주의 질서와 공동 유산이라는 개념은 지구 자원의 관리를 위한 더 나은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생태학적 제 문제의 영향은 개별 국가의 국경선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그 해결책을 단지 국가적 차원에서만 모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근에 그러한 국제적 행동을 향한 발전적인 조치들이 이루어지기는 하였습니다만, 기존의 체계와 기구는 포괄적인 행동 계획의 발전을 위해서는 분명 부적절한 것입니다. 그 한두 가지 요인만을 말씀드리자면, 정치적인 여러 장애, 과도한 형태의 민족주의, 경제적인 이해 등이 국제적인 협력과 장기적인 효과적 행동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국제적 차원의 활동에 대한 요구는 각국의 책임을 결코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규범의 이행에 있어서 각국 정부는 다른 나라들과 제휴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자국 내에서 사회의 가장 취약한 영역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필요한 사회-경제적 조정을 하거나 이를 촉진하여야 합니다. 정부는 또한 자국의 영토 내에서 그 무엇보다도 과학 기술 발달의 영향에 대한 신중한 감시를 통하여 대기권과 생물권의 파괴를 막아내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그 국민들이 위험한 오염 물질이나 유독성 폐기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을 보장하여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안전한 환경에 대한 권리는 오늘날 새로운 인간권리 헌장에 포함되어야 할 권리로서 더욱더 줄기차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IV. 새로운 연대의 절박한 요구

10. 생태계의 위기는 특히 개발도상국들과 선진 산업국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연대의 절박한 도덕적 요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평화롭고 건강한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증진을 위하여 상호 보완적인 방법으로 점진적으로 책임을 분담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신흥 산업 국가들은 선진 산업국들이 자국의 영토 내에서 먼저 적용하지 않는 한 그 신흥 산업에 대한 제한적인 환경 기준을 적용하도록 요구당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동시에 산업화 과정에 있는 국가들은 과거에 다른 나라들이 범했던 오류들을 되풀이하여 산업 오염 물질, 과도한 산림 벌채,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무제한 개발 등을 통한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계속할 수 있는 자유가 실제로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해 폐기물의 처리에 대한 해결책 모색이 절박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태계의 위기가 요청하는 연대, 또 평화를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이 새로운 연대의 절대적 요구를 세계의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확신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계획이나 조직도 필요한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는 국가 간의 평화로운 협력 관계의 강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11. 또한 전 세계에 존재하는 빈곤의 구조적 형태를 직접 해결하지 않고서는 적절한 생태학적 균형을 모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많은 나라의 농촌 빈곤과 불의한 토지 분배는 영세농업과 토양의 피폐를 야기하여 왔습니다. 농토가 더 이상 소출을 내지 않으면 많은 농민들은 깨끗한 새 땅을 찾아 이동하게 되어 무절제한 남벌을 가속화시키거나, 농민들을 받아들일 만한 하부 구조를 갖추지 못한 도시 지역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막대한 외채를 지고 있는 일부 국가들은 새로운 수출 상품의 개발을 위하여 생태계의 균형을 결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희생시켜 가며 천혜의 자연 유산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결과만을 내세워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운다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땅을 경작하도록 부여받은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제 민족과 국가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물론 과감한 구조 개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2. 그러나 우리를 위협하는 또 다른 위협 곧 전쟁의 위협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현대 과학은 이미 적대 행위의 목적으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그러한 환경의 변경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극히 심각한 결과들을 초래할 것입니다. 화학전, 세균전, 생물전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균형을 변경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공격 무기의 개발을 위한 실험실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어떠한 형태이든 세계적 규모의 전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지전이나 지역전마저도, 비록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인간 생명과 사회 구조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대지를 황폐케 하고 곡물과 초목을 절명시키며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열악한 환경 조건 속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 조건은 환경에 더욱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극도로 불안한 사회 상황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13. 현대사회는 그 생활양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는 한 결코 생태학적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 도처의 사회는 순간적인 만족과 소비주의를 누리고 있으며 그것이 야기하는 폐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제가 이미 말씀 드렸던 바와 같이, 생태학적 문제의 심각성은 인간의 도덕적 위기가 지닌 심각성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처지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결여될 때에,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지구 자체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고 맙니다. 간단히 말해서 소수의 무심한 습관이 끼치는 부정적인 결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절제와 극기는 물론 희생정신이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생태계에 대한 책임을 가르치는 교육, 즉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지구에 대한 책임을 가르치는 교육이 절실합니다. 이러한 교육은 단순한 감정이나 공허한 소망에 뿌리를 박을 수는 없습니다. 그 교육의 목적은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현대 세계에 대한 배척이나 어떤 ‘실락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부질없는 소망을 그 바탕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책임에 대한 참된 교육은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의 진정한 회개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여러 교회와 종교 집단들, 민간단체와 정부기구들, 참으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저마다 그러한 교육을 위하여 수행하여야 할 구체적인 역할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으뜸가는 교육자는 가정입니다. 바로 가정에서 어린이는 자기 이웃을 존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14. 끝으로 창조의 미적 가치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과 우리의 만남 그 자체가 심오한 치유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위대한 자연에 대한 명상은 평화와 평온을 가져다줍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부름 받은 피조물의 선과 미를 거듭거듭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창세 1,4 이하; 시편 42; 104,1 이하; 지혜 13,3-5; 집회 39,16.33; 43,1.9 참조) 인간의 창조력이 낳은 위업에 대한 명상 또한 좀 더 난해하기는 하지만 똑같이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시들마저 모두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으며, 그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환경 보호의 동기를 부여할 것입니다. 훌륭한 도시계획은 환경 보호의 중요한 부분이며, 대지의 자연미에 대한 존중은 생태학적으로 건전한 개발을 위하여 없어서는 아니 될 필요조건입니다. 훌륭한 미적 교육과 건강한 환경 유지 사이의 관계는 결코 간과될 수 없습니다.

 

V.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

15.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지적한 대로, 그 다양한 측면들은 개인과 민족과 국가와 국제 공동체에 속하는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일치된 노력의 요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모든 노력과 더불어 손을 맞잡고 나아갈 뿐 아니라 그러한 노력들을 구체적으로 북돋아 주고 강화시켜 줍니다. 생태계의 위기를 평화의 추구라는 한층 더 폭넓은 맥락에서 볼 때에, 우리는 지구와 그 환경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에 기울여야 할 관심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가 우리에게 하는 말은 곧 우주에는 마땅히 존중하여야 할 질서가 있으며 자유로운 선택의 역량을 부여받은 인간은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하여 이 질서를 보전하여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태계의 위기는 도덕문제라는 말씀을 저는 거듭 되풀이해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특정한 종교적 신념을 지니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공동선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건강한 환경의 회복에 기여하여야 할 자신의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환경의 회복에 기여하여야 할 자신의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안에는 명확한 질서와 조화가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피조물 안에서의 자기 책임은 물론 자연과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가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 앞에 열려 있는 교파 간 종교간 협력의 광활한 영역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16. 이 메시지를 마치며, 저는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여야 할 중대한 의무를 상기시키기 위하여 가톨릭 교회 안에 있는 저의 형제자매들에게 직접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건강한 환경을 보전하려는 신앙인들의 투신은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서 직접 뻗쳐 나오는 것이며, 원죄와 본죄의 결과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그리고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으로부터 직접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또한 인간과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부름 받는 다른 피조물들(시편 148; 96참조)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1979년에 저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자연 환경을 증진시키는 사람들의 천상 수호자로 선포하였습니다.(사도직 서한 Inter Sanctos, AAS 71 ‘1979’ 1509면 이하 참조)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피조물을 참으로 깊이 존중하는 모범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피조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성 프란치스코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동물들과 식물들, 온갖 자연들, 형제자매인 해와 달까지 초대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주님을 찬미하셨습니다. 아시시의 그 가난한 사람은 우리가 하느님과 평화를 이룰 때에 모든 민족 간의 평화와 떼어 놓을 수 없는 모든 피조물과의 평화를 이룩하는 데에 우리 자신을 더욱 훌륭하게 헌신할 수 있다는 놀라운 증거를 보여 주고 계십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영감이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저 선하고 아름다운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더더욱 생생한 ‘형제애’의 의식을 지켜 나가도록 우리를 도와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인께서 인류 가족 안에 존재하는 저 위대하고도 숭고한 형제애에 비추어 모든 피조물을 존중하고 보살펴야 할 우리의 중대한 의무를 끊임없이 깨우쳐 주시기를 빕니다.

 

1989년 12월 8일 바티칸에서,

세계 평화의 날 교황 재위 10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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