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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물벗 길잡이(개정판)

목차

[하늘땅물벗 길잡이(개정판)]는 하늘땅물벗의 취지, 영성, 회원, 조직, 활동 등을 담은 회칙과 성경과 교황청 문헌 중에서 환경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선별하여 담고 있습니다.

 

 

하늘땅물벗의 창립을 축하하며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고 말씀하십니다. 그 에덴 동산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인간을 이 세상의 관리자요, 일꾼으로 보내셨음에도, 우리 인간은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찬미받으소서」, 2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시니 좋았던 지구는 인간으로 인해 손상을 입고 울부짖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늘땅물벗의 사명은 창세기가 전하는 대로 창조주 하느님께서 원래 정하신 그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우리 인간의 탐욕과 무질서 때문에 조작되며 파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만하게 주인 행세를 하지 않고 겸손한 일꾼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과 바람이 하늘땅물벗을 창립하게 한 원동력입니다.

 

하늘땅물벗의 창립은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생태사도직 단체가 전 세계 어디에도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의 신앙생활은 전통적으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늘땅물벗의 신앙생활은 더 나아가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자연 사랑의 통합적인 실천을 지향합니다. 그러하기에 신앙생활의 목표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늘땅물벗은 각자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본당과 동네에서 생태영성적 삶을 실천하되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나 함께하기가 쉬워 세상과 교회가 변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늘땅물벗의 창립은 문명사적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땅물벗은 물질이 중심이 되는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신앙과 영성에 의한 지속 가능한 문명 창달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하늘땅물벗의 삶을 사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나서 본당과 교구, 나아가 나라의 경계를 넘어 퍼져 나간다면 분명 지구의 모습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날에 다양한 서구 신심 운동과 영성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듯이, 어쩌면 하늘땅물벗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영성 심화에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하늘땅물벗이 비록 겨자씨처럼 작은 시작이지만 큰 나무로 성장하여, 현재 지구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새로운 영적 문명의 문을 활짝 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기에 문명사적으로 새로운 대안적 삶을 살겠다고 창립하는 하늘땅물벗의 의의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늘땅물벗의 삶은 예수님 말씀대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단순하거나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많이 불편하고, 크고 작은 고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결국 우리를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삶으로 이끌어 주리라 확신합니다. 우리가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성스러운 일은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몸소 그리하셨듯이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하늘땅물벗의 창립과 확산에 노고를 아끼지 않는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재돈 신부님과 창조질서의 보전과 회복을 위해 함께 애쓰고 있는 하늘땅물벗 회원들에게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7년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 주교 유경촌

 

 

하늘땅물벗 길잡이를 개정하며

 

하늘땅물벗은 창조 질서 보전을 위한 그리스도교 평신도 생태 사도직 단체로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반포에 힘입어 2016년 10월 4일 창립되었습니다. 우리는 「찬미받으소서」가 제시하는 통합 생태론의 정신에 따라 생태 교육을 통한 생태적 회개에 힘써 왔습니다. 그 결과 여러 본당과 단체에서 자발적으로 단위벗들이 생겨나 생태 사도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서울대교구뿐만 아니라 다른 교구에서도 하늘땅물벗을 설립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우리는 2021년 5월부터 가톨릭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과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창립 1주년이 되던 2017년 10월 4일에 단체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모임과 사도직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이 길잡이를 발간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6년 동안 운영해 보니 몇 가지 개선할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여러 교구가 이 길잡이를 함께 사용하려면 모임의 양식이 모호하지 않고 분명해야 하는데 이러한 필요에 맞추어 길잡이를 개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개정판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모임 양식의 개정, 교회의 가르침 보강, 그리고 하늘땅물벗 상징물을 제작하는 것입니다. 우선 모임 순서에 대한 기존 양식의 설명이 지나치게 간략하다는 지적에 따라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모임 순서를 조정하고 설명을 보완하며 통일적인 양식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어서 협력 회원을 신설하고, 하늘땅물벗 회원 십계명을 제정하며, 자금 관리를 자율에 맡겼습니다. 그밖에 하늘땅물벗 모임에서 문헌 공부를 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회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교회의 가르침을 보강
하고, 부록으로 회의록 양식을 실었습니다.

 

이번 길잡이 개정을 위해 특히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사무국장 박리드비나 수녀님과 하늘땅물벗 임원들께서 많은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하늘땅물벗 한국협의회에서 개정안을 검토해 주셨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생태 사도직 단체 하늘땅물벗이 모든 교구와 본당에 널리 퍼지는 데에 이 길잡이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3년 10월 4일
성 프란치스코 축일, 하늘땅물벗 창립 7주년을 맞으며
가톨릭 하늘땅물벗 한국협의회 회장 최선호 이보
가톨릭 하늘땅물벗 한국협의회 담당 사제 이재돈 요한

 

 

하늘땅물벗 길잡이를 발간하며

 

하늘땅물벗이라는 이름은 1991년에 처음 지어졌습니다. 이후 오랜 각고 끝에 2016년 10월 4일, 비로소 단체로 창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2월 1일에 서울대교구에서 공식적인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인준을 받았습니다.

하늘땅물벗은 단체로 창립된 뒤 가장 먼저 취지, 영성, 회원, 조직, 활동 등을 담은 회칙을 마련하였고 곧이어 창립 대회와 인준 절차를 거쳤습니다. 이후 하늘땅물벗의 활동이 점차 확산되면서 회원에게 좀 더 쉽고 효과적으로 하늘땅물벗을 알리려면 길잡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이번 길잡이를 마련하면서 기존의 회칙은 보완하고, 성경과 교황청 문헌 중에서 환경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선별하여 하늘땅물벗 회원이 꼭 알았으면 하는 항목을 보태었습니다.

하늘땅물벗 길잡이가 나오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늘땅물벗 창립 미사를 주례해 주시고, 이번 길잡이에 격려사를 써 주신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이신 유경촌 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운영위원들과 직원들, 하늘땅물벗 임원들과 생태영성학교 1기 수료생들도 길잡이 검토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길잡이를 통해 하늘땅물벗 생태사도직이 더욱 널리 퍼지고 나아가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회복하는 데 큰 보탬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7년 10월 4일

성 프란치스코 축일, 하늘땅물벗 창립 1주년을 맞으며

서울대교구 하늘땅물벗 교구벗 회장 이인석 유스티노

서울대교구 하늘땅물벗 담당 사제 이재돈 요한

 

제1장 설립 취지

 

 

1. 설립 배경

 

오늘날 지구 생태계는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이는 인류가 대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점점 빠르게 발달하는 과학과 기계 기술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폐기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존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창조세계의 의미와 창조세계 안에서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5년에 반포하신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은 현대를 사는 신앙인의 본질적인 과제라고 천명하신다.[1] 이웃 사랑이 곧 하느님 사랑이듯이 자연 사랑이 곧 하느님 사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신앙인은 이웃 사랑만이 아니라 자연 사랑도 실천해야 한다.

신앙인에게 자연은 단순한 삶의 환경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과 숨결로 창조하신 하느님 현존의 장이다. 따라서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가 사도로부터 이어 온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이며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 과제이다.

모든 신앙인이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지만 이를 좀 더 효과적으로 실현하려면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도직 단체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생태사도직 단체인 하늘땅물벗의 출현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것이다.

 

2. 사명

 

하늘땅물벗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보전하기 위해 생태 보호의 책임을 실천하는 생태 사도직 단체이다. 하늘땅물벗은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으 황폐해진 피조물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생태적 회개를 바탕으로 창조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늘땅물벗의 사명은 그 명칭에도 잘 드러나 있다. 하늘땅물벗은 하늘과 땅과 물을 살리는 벗들의 모임이다. 하늘과 땅은 자연 세계 전체를 의미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다. 그리고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세례성사의 재료이기도 하다. 벗은 우리 인간의 친교를,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속하므로 자연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우리 인간과 하늘, 땅, 물은 서로 무관한 관계, 혹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벗이 되어 서로 아끼고 돌보며 살아가야 하는 인격적인 관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늘, 땅, 물을 벗으로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 이는 곧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며, 이 길을 통해 인간은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온전하게 된다.

하늘땅물벗은 생태사도직에 뜻을 같이하는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기도하고 활동하는 자생적인 조직이다. 이곳에서 회원들은 창조질서 보전 활동에 대한 체험과 정보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사목자와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생태사도직을 수행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본당 차원에서부터 교구 차원으로, 더 나아가 전국적인 차원에서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연대한다.

 

3. 창립과 발전

 

하늘땅물벗을 사도직 단체로 만들려는 움직임은 1991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1990년 1월 1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를 발표하셨다. 이 담화는 환경 문제만을 다룬 첫 번째 교회 문헌으로, 한국 천주교회 안에 창조 질서 보전 운동을 촉발했다. 서울대교구는 1991년부터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활실천부를 중심으로 환경 운동을 시작했다. 이때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모여 교회 내 환경 운동의 발판으로 하늘땅물벗 모임을 만들고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했으나, 사도직 단체로 정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런 가운데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반포하신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찬미 받으소서」는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교회 환경 운동의 공식적인 지침서로서 한국 천주교회 환경 운동의 활성화에도 다시금 불을 지폈다. 「찬미받으소서」의 가르침에 격려를 받아,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는 하늘땅물벗 단체를 창립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환경 운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교회 환경 운동에 관심 있는 신자들은 사제, 수도자들과 협력하여,  2016년 10월 4일 교회 생태 운동의 주보성인이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에 하늘땅물벗을 천주교 생태 사도직 단체로 창립하였다. 이후 서울대교구는 2017년 2월 1일자로 하늘땅물벗을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인준하였다.
인천교구도 2019년 2월 1일에 하늘땅물벗을 생태 사도직 단체로 승인하였고, 이를 교구 내 모든 본당에 설립하도록 결정하였다. 제주교구는 2022년부터 본당에 하늘땅물벗을 설립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여러 본당에서도 설립을 준비 중이다. 그 외의 여러 교구들도 하늘땅물벗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서울대교구, 인천교구, 제주교구는 하늘땅물벗의 효과적인 활동을 위해 교구 간의 정보 교환 및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였고, 2023년 8월 3일 ‘가톨릭 하늘땅물벗 한국협의회’를 결성하여 전국적 연대 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제2장 영성

 

 

4. 생태 교육

 

하늘땅물벗 회원은 생태 사도직을 효과적으로 수하기 위하여 반드시 생태교육을 받아야 한다. 생태 교육을 통해 우리는 공동의 집인 지구의 위기 상황에 대해 알게 되고, 그 대안과 실천 방안을 배울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중독적인 소비 만능주의의 현실을 자각하여 물질의 소유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생활양식에 변화가 일어나면 개인적 이기주의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발휘하는 이들에게 건전한 압력을 행사하여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2] 또한 교육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피조물의 관리자로서 다음 세대의 자원을 단지 빌려 쓰고 있는 것을 깨달아, 다음에 올 세대와의 연대를 돈독하게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생태교육을 통해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깊어진다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더욱더 깊어질 것이다.

이에 우리는 활동 기간과 경력에 따라 단계별로 교육에 참여하도록 하며, 회합마다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기회가 되는 대로 생태교육, 생태피정 등과 같은 과정에도 참여하도록 한다.

 

5. 생태적 회개

 

현대의 인간 중심주의적 사상에서는 신앙 실천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만 중점을 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보시니 좋았던’ 하느님의 모든 자연 피조물들에 대한 사랑은 상대적으로 등한시한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것만 죄라고 생각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창조 질서를 망가뜨린 것에 대해서는 죄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늘땅물벗 회원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자연 사랑을 모두 통합적으로 생각한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며, 각자의 탐욕과 부주의로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는 것이 창조주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물질에 치우친 의식과 생활 습관을 깨닫고, 이를 청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같은 생태적 회개는 우리를 내적 풍요로움을 갈망하는 삶으로 이끌 것이다.[3]

 

6. 생태 영성

 

하늘땅물벗 회원은 생태 영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영성을 “우리의 개인적 공동체적 활동에 자극과 동기와 용기와 의미를 주는 어떤 내적인 힘”[4]으로 정의하면서, 생태 운동에 투신하기 위해서는 생태 영성이 필수적임을 강조하신다.

하늘땅물벗의 영성은 한마디로 물질적으로는 검소하지만 영성적으로는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태 영성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절제 속에서 기쁨과 평화가 함께하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단순한 생활 속에서 즐길 줄 아는 삶이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가 아닌 검소한 생활 속에서 형제적 만남, 봉사, 능력 개발, 음악과 미술, 자연과의 만남, 기도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삶을 영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5] 교회는 우리가 인간의 몸이나 자연, 또는 세상 현실에서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과 일치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생태 영성의 삶을 사는 것은 산업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한 우리에게 쉽지 않은 일이고, 많은 불편함을 스스로 감수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이런 의미로 생태계 회복을 위한 노력은 녹색 순교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신앙의 선조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기쁘게 순교의 길을 선택하셨듯이 우리도 시대가 요구하는 녹색 순교에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

 

7. 복음삼덕과 사추덕

 

하늘땅물벗 영성에서 중요한 것이 우리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인 복음삼덕(福音三德)과 사추덕(四樞德)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이며, 빈말이 아니라 목숨을 바쳐 순교에 이르는 행동하는 신앙이다.

하느님을 우주의 창조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창조에 대한 우리의 신앙대로 우리가 몸소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적 기초로 교회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복음삼덕과 사추덕은 하늘땅물벗 회원들에게도 적용된다.

복음삼덕이란 청빈, 순명, 정결이다.

우리는 ‘청빈’의 덕을 통해 물질 만능 시대에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법을 배운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해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이다.

우리는 ‘순명’의 덕을 통해 자신의 인간적 욕구 충족에만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 말씀과 이웃, 그리고 다른 피조물의 요구에 경청하는 방법을 배운다. 특히 하느님의 숨결과 손길이 깃든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내적 평화에 이를 수 있다.

‘정결’의 덕은 영적 열매의 전제 조건으로, 피조물과 이웃에게 더 자유롭게 봉사할 힘을 준다. 우리는 피조물을 살리는 ‘즐거운 지구 살리기 운동’과 같은 신앙 실천에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내적 힘을 여기서 얻을 수 있다.[6]

사추덕은 절제, 지혜, 용기, 정의이다.

‘절제’의 덕은 우리가 함부로 소비하거나 낭비하지 않으면서, 모든 피조물과 공생할 수 있는 방식을 배우게 해 준다. 이는 물질적 풍요와 극도의 빈곤이 공존하고 있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지혜’는 내일을 내다보면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게 해 준다. 특히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하여 무엇이 선한 행위이고 무엇이 해로운 행위인지를 분별하고, 깨달은 바를 행동으로 옮기게 해 준다.

‘용기’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수고나 위험, 박해도 감수하게 해 준다. 생태위기의 극복을 위한 노력과 활동에는 참된 용기의 덕이 필요하다.

‘정의’는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 그리고 다음 세대 후손들까지 생각하여 행동하게 한다. 세대 간의 연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근본적 문제이다. 환경은 각 세대가 빌려 쓰는 것으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이를 온전히 넘겨주어야 한다.[7]

 

8. 모든 피조물의 모후이신 성모님과 생태 사도직의 주보성인 프란치스코

 

하늘땅물벗 회원들은 모든 피조물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특별한 도우심을 청한다. 예수님을 돌보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상처입은 이 세상을 모성애로 함께 아파하며 돌보신다. 성모님께서는 꿰찔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해하신 것처럼 핍박받는 가난한 이들과 인간의 힘으로 황폐해진 이 세상의 피조물 때문에 지금도 슬퍼하고 계신다.
완전히 변모하신 성모님께서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사시고,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성모님께서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묵시 12,1) 여인이시며 하늘로 들어 올려지시어 모든 피조물의 모후가 되신다. 영광스러운 몸이 되신 성모님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계시며, 피조물이셨던 분으로서 그 완전한 아름다움에 이르게 되셨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전 생애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셨을 뿐만 아니라(루카 2,19.51 참조), 이제는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하신다. 그래서 하늘땅물벗 회원은 이 세상을 더 지혜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성모님께 간청할 수 있는 것이다.[8]

 

하늘땅물벗의 영성을 온몸으로 사신 분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태 운동의 주보성인이신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고자 노력해야 한다. 1979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교회의 생태 사도직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하셨다.

성인은 하느님의 피조물과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평생을 그들에게 사랑으로 헌신했다. 성인의 삶은 자연 보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사회적 헌신, 그리고 내적 평화가 서로 어떻게 불가분의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성인은 해와 달과 작은 동물들을 바라볼 때마다 모든 피조물을 찬미하며 노래를 불렀다. 성인에게 있어 모든 피조물은 사랑의 유대로 자신과 결합한 누이이며 형제였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수도원 정원의 일부를 언제나 손대지 않은 상태로 놓아두어 거기에 들꽃과 초목이 자라게 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본 사람들이 아름다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였다.

세상은 감사와 찬미로 관상해야 하는 기쁜 신비이다. 우리는 자연을 접하면서 이러한 경탄과 경이에 열려 있어야 하고, 세상과의 관계에서 우애와 아름다움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을 만난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태적 삶을 우리는 묵상하고 따라야 한다.

 

 

제3장 회원(벗님)

 

 

9. 입회

 

〔입회 신청〕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는 자유롭게 하늘땅물벗에 입회 신청을 할 수 있다. 하늘땅물벗의 기본 조직은 ‘벗’이고(제4장 참조) 회원은 ‘벗님’이라 부른다. 입회 신청은 입회하기를 원하는 벗에 국한다.

 

〔식별〕 입회 신청을 받은 벗의 회장은 신청자가 그리스도교 영성 안에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창조질서의 올바른 회복을 위하여 생태 사도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하늘땅물벗 회원의 의무를 수행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식별해야 하며, 만약 신청자가 가입 요건을 갖추었다고 인정되지 않으면 요건을 갖출 때까지 입회를 보류할 수 있다.

 

〔준비 기간〕 입회가 허락된 예비 회원은 최소한 3개월 이상의 준비 기간을 거친 후 정회원으로 등록한다. 그러나 준비 기간에도 생태 사도직 활동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다.

 

〔선서 및 등록〕 예비 회원이 정회원이 되려면 반드시 회원 선서를 한 후 ‘벗님 명부’에 이름을 등록해야 한다. 예비 회원이 준비 기간을 충실하게 이수하였다고 판단되면, 회장은 적어도 일주일 전에 입회를 사전 통보하여 선서의 내용과 뜻을 익히고 새기도록 준비시킨다. 선서는 원칙적으로 벗 모임 때 모든 회원 앞에서 하며, 때에 따라서 지구 또는 교구 차원의 하늘땅물벗 행사에서 할 수도 있다.

 

〔협력 회원〕 하늘땅물벗의 취지에 동의하지만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기 어려운 예비 회원 또는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긴 정회원에 대해서는 임원 회의 의결을 통하여 협력 회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도움벗’이라 부른다. 협력 회원은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하지는 아니하나 임원들 및 회원들과 계속 연락을 해야 하며, 하늘땅물벗 회원의 의무와 십계명을 모두
준수한다.

 

10. 선서의 의미와 형식

 

〔선서의 의미와 목적〕 선서의 의미와 목적은 복음이 제시하는 피조물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를 제시하셨다. 하늘땅물벗 회원은 선서 중에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리스도교 영성 안에서 우주적 형제애를 드러낸다. 하늘땅물벗 회원은 입회할 때 선서할 뿐 아니라, 생태적 삶으로의 부르심을 되새기기 위하여 매년 선서를 갱신해야 한다.

 

〔선서문〕

 

하느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세상의 온갖 것을 지어내시고 사랑하시니,

주님을 흠숭하나이다.

주님께서는 저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셨으며,

우주 만물이 주님의 것이고

한 형제자매임을 깨닫게 하시어

교회 안에서 생태적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시니

주님께 감사드리나이다.

저 ________________는

하늘땅물벗의 벗님으로서

당신께서 지으신 창조 질서를 보전하는 생태적 삶을 살기로

선서하오니/(갱신의 경우) 선서를 갱신하오니,

당신 성령의 힘을 제게 주시어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

모든 피조물과 함께 찬미하나이다.

전능하신 성부께서 손수 빚으신

모든 피조물과 함께 찬미하나이다.

모든 피조물은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현존과 자애로 충만하나이다.

찬미받으소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만물이 당신을 통하여 창조되었나이다.
성자께서는 성모 마리아께 잉태되시어
이 땅에 속하셨으며
인간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셨나이다.
성자께서는 오늘도 당신 부활의 영광 안에서
모든 피조물 안에 살아 계시나이다.

찬미받으소서!

성령님, 성령께서는 당신의 빛으로
이 세상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끄시며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피조물과 함께하시나이다.
성령께서는 또한 저희 마음 안에 머무르시며
저희를 선으로 이끄시나이다.
찬미받으소서!

 

삼위일체이신 주 하느님,
무한한 사랑의 놀라운 공동체를 이루시니
만물이 하느님을 이야기하는 세상의 아름다움 안에서
저희가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가르쳐 주소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를 통하여
저희의 찬미와 감사를 일깨워 주소서.
존재하는 모든 것과 친밀한 일치를 느끼도록
저희에게 은총을 내려 주소서.

 

사랑의 하느님,
이 세상에 저희에게 맞갖은 자리를 보여 주시어
저희가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하느님께서 기억하지 않으시는 존재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권력과 재물을 가진 이들을 깨우쳐 주시어

무관심의 죄를 짓지 않게 하시고

공동선에 호의적이며 약한 이들을 도와주고

저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돌보게 하소서.

가난한 이들과 지구가 부르짖고 있나이다.

 

주님,
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받으소서!
아멘.

 

11. 소속의 가치 및 회원의 의무

 

〔소속의 가치〕 하늘땅물벗 회원이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공동체적으로도 피조물과 맺는 건전한 관계가 인간의 온전한 회개의 한 차원임을 깨닫고 참된 내적 회개와 지속적 변화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언하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으로 선물하셨기에 우리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포기하고 누가 보거나 인정하지 않더라도 관대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9] 하늘땅물벗 회원은 일상생활에서 소비 지향적 생활양식을 지양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생태적 삶을 삶으로써 가난한 이들과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돌봄의 문화가 온 사회에 퍼지도록 해야 한다.

 

〔회원의 의무〕 회원은 하늘땅물벗의 모임과 행사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창조 질서 보전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며, 활동 지침에 따른 생태 사도직 활동을 충실히 수행하고, 활동과 더불어 기도를 매일 바친다. 회원은 ‘찬미받으소서 기도’[10]를 매일 바친다. 또한 하느님의 성령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회원들 간에 친교를 나누고, 하늘땅물벗의 조직을 유지하고 생태 사도직 활동을 고무하기 위하여 재정적 후원을 해야 한다.

 

〔하늘땅물벗 회원 십계명〕
1. 하느님 창조 질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힌다.
2. 지구의 부르짖음에 응답한다.
3.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한다.

4. 생태적으로 회개한다.
5. 생태 영성의 삶을 산다.
6. 피조물 보호를 위한 미사에 참례한다.
7. 찬미받으소서 기도를 매일 바친다.
8. 하늘땅물벗의 모임과 행사에 적극 참여한다.
9. 생태 사도직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10. 하늘땅물벗을 위해 재정적 후원을 한다.

 

12. 장기 유고, 전회 및 퇴회

 

〔장기 유고〕 회원은 장기간 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소속 ‘벗’ 회장의 허락을 받아 장기 유고를 할 수 있다. 회장은 장기 유고 중인 회원의 근황을 지속해서 살피고 동반해야 한다.

 

〔전회〕 회원은 이사 또는 전직 등으로 말미암아 소속 벗의 모임에 참석하기 어려운 경우 소속 벗 회장의 허락을 받아 모임에 참석하기 편리한 다른 벗으로 전회할 수 있다.

 

〔퇴회〕 개인적 선택에 따라 하늘땅물벗을 퇴회하려는 회원은 자신의 의사를 소속 벗 회장에게 알리고 퇴회할 수 있다. 퇴회한 회원이 다시 입회하고자 할 때는 입회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자격 정지 또는 강제 퇴회〕 ① 회원이 합당한 사유 없이 선서의 갱신을 거부하거나 3개월 이상 회합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와 ② 신자로서 적절치 못한 표양을 보이거나 하늘땅물벗이 지향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경우, 소속 벗 회장은 해당 회원에게 소명의 기회를 준 다음 임원들과 협의하여 자격 정지 또는 강제 퇴회를 결정할 수 있다. 특히 위 ②의 경우에는 지구벗(지구벗이 구성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교구벗. 이하 같다.)이 해당 회원에게 소명의 기회를 준 다음 자격 정지 또는 강제 퇴회를 결정할 수도 있다. 자격 정지 또는 강제 퇴회를 당한 회원은 지구벗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제4장 조직과 회의

 

 

13. 벗

 

〔기본 조직〕 하늘땅물벗의 기본 조직은 ‘벗’이다. 벗은 본당, 학교, 직장 등 각종 단체(이하 ‘본당’이라 통칭한다.)에 소속된 신자들로 구성한다. 벗의 명칭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물(구름, 진달래, 매봉바위 등), 문화물(성곽, 삼선교 등) 등 상징이 될 만한 피조물의 이름을 붙여서 만든다. 예를 들어 ‘가톨릭 ○○교구 하늘땅물벗 ○○○성당 진달래벗’, ‘가톨릭 ○○교구 하늘땅물벗 ○○학교 매봉바위벗’과 같다.

 

〔교구 안에서의 일치〕 하늘땅물벗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풍요로운 유산에 충실하도록 벗-지구벗-교구벗의 세 가지 관리 단계로 유연하고도 기능적인 조직을 가진다. 모든 벗은 교구벗에 가입되어야 한다.

 

〔벗의 설립〕 벗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교구벗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해당 본당의 주임 신부 또는 담당 신부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주임 신부나 담당 신부가 없을 때는 교구벗 담당 사제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모임〕 벗은 매주 1회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모임을 한다. 다만 벗의 형편상 부득이한 경우에는 영성 담당자와 상의하여 달리 정할 수 있으나, 반드시 정기적인 모임이 되도록 한다. 모임 시간은 1시간 내지 1시간 30분 정도로 한다.

 

〔영성 담당자〕 벗에는 사제 또는 수도자를 영성 담당자로두어야 한다. 본당의 주임 신부 또는 담당 신부가 있을 때는 그 사제를 영성 담당자로 하고, 담당 신부가 없을 때는 교구벗 담당 사제가 교구 소속 사제 또는 교구에서 활동하는 수도자 중에서 영성 담당자를 지명한다. 영성 담당자는 여러 개의 벗을 담당할 수 있다. 영성 담당자가 벗의 모임에 참석할 수 없을 때는 다른 사제나 수도자를 지명하여 그 임무를 대신하게 할 수 있다. 영성 담당자는 모임에서 제기된 신앙이나 윤리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

 

〔임원〕 영성 담당자는 벗의 당연직 임원이며, 그밖에 회장, 부회장, 총무, 회계를 둔다. 회장은 ‘반석벗’, 부회장은 ‘디딤벗’, 총무는 ‘일벗’, 회계는 ‘살림벗’이라 부른다. 회장, 부회장, 총무, 회계는 벗 모임에서 회원들이 선출하며, 임기는 2년이고 연임할 수 있다. 회장은 벗을 대표하고 모임의 의장이 되며 업무를 총괄한다. 부회장은 벗의 운영 및 활동 전반에 걸쳐 회장을 보좌하고 특히 예비 회원 등 회원을 보살피는 업무를 한다. 총무는 벗의 회의록 및 각종 문서를 작성하고 실무를 담당할 책임이 있다. 회계는 벗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계 장부를 기재하여 보관하는 업무를 한다.

 

〔본당벗〕 하나의 본당 내에 여러 개의 벗이 생기고 본당 차원의 현안에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경우, 영성 담당자와 벗들의 회장이 협의하여 본당 소속 벗들의 연합체로서 본당벗을 둘 수 있다.

 

14. ‘벗’의 모임 순서

 

〔순서〕 벗 모임은 다음 순서에 따라 형식을 준수하여 진행한다. 이러한 모임 순서 및 형식의 준수는 하늘땅물벗의 일치와 연대성을 드러낸다.

 

1. 시작 기도 :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
2. 전차 회의록 낭독 및 서명

3. 신입 회원 소개
4. 성경 또는 교회 가르침 봉독
5. 선서 갱신과 하늘땅물벗 회원 십계명 :
선서 갱신은 매년 10월 첫 번째 모임에서, 십계명은
10월 이외의 매월 첫 번째 모임에서 합송한다.
5. 회계 보고
6.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의 찬가
7. 활동 나눔
8. 공지 사항 및 안건 토의
10. 영성 담당자 말씀 또는 소식지나 길잡이 등 문헌 공부
11. 마무리: 의결 사항 재공지, 출석 확인,
12. 마침 기도: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사제의 강복)

 

〔모임 준비〕 임원들은 모임 시작 전에 미리 와서 모임에 필요한 준비를 한다. 기도상이 차려진 탁자의 한쪽에 하늘땅물벗 로고가 새겨진 흰 보를 깔고 그 가운데에 하늘땅물벗 십자가를, 양옆에 모든 피조물의 모후이신 성모님 이콘과 생태 사도직의 주보성인이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콘을 놓는다. 기도상보와 성물, 회의록 등 비품은 교구벗을 통하여 마련한다.

 

〔시작 기도〕 정해진 시각이 되면 곧바로 벗 모임을 시작한다. 모임의 정시 시작은 벗의 능률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회원들은 기도상이 차려진 탁자 주위에 둘러앉는다. 시작 기도로 ‘성호경’과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길잡이 78항)를 교송으로 바친다. 모든 회원은 한목소리로 소리 내어 기도하며, 예수님과 성모님, 주보성인이 그 자리에 계시는 것과 같이 여겨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기도를 바친다.

 

〔전차 회의록 낭독 및 서명〕 총무가 전차 회의록을 낭독한 후 참석한 회원들에게 수정 여부를 확인하여 승인을 얻으면 회장이 서명한다. 회의록은 총무가 너무 길거나 짧지 않도록 알맞게 작성하며, 각 모임 때마다 일련번호로 차수를 매겨야 한다. 회의록이 작성되면, 총무는 하늘땅물벗 홈페이지(https://fhew.org)의 벗마당 해당 벗 페이지에 정해진 양식에 따라 회의록을 올린다.

 

〔신입 회원 소개〕 회장은 새로 가입한 회원이 있으면 소개한다.

 

〔성경 또는 교회 가르침 봉독〕 회장 또는 회장이 지명한 회원이 성경 말씀 또는 교회 가르침(길잡이 제6장, 교황 회칙 등)을 봉독한다. 봉독은 한 사람이 할 수도 있고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영적 독서는 5분을 넘지 않도록 한다. 봉독 후 회원들은 함께 성호를 긋는다.

 

〔선서 갱신과 하늘땅물벗 회원 십계명〕 회원들은 일어서서 매년 10월 첫 번째 모임에서 선서 갱신을, 10월 이외의 매월 첫 번째 모임에서 ‘하늘땅물벗 회원 십계명’을 합송한다.

 

〔회계 보고〕 회계는 매회 모임마다 벗의 수입과 지출 및 잔고 내용을 회원들에게 보고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의 찬가〕 길잡이 76항을 교송으로 바친다.

 

〔활동 나눔〕 활동 나눔은 기도 활동과 생태 사도직 활동에 관한 것이다. 기도 활동은 회원들이 매일 바쳐야 하는 찬미 받으소서 기도, 창조 질서 보전을 지향으로 한 미사와 묵주기도, 화살기도, 생태 피정, 생태 기도회 참석 등을 말한다. 생태 사도직 활동은 길잡이 제5장에 있는 직접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에코 포럼, 생태 세미나 등 생태 교육과 생태 캠페인 등 각종 창조 질서 보전을 위한 활동이 포함된다. 활동 나눔을 할 때 회원들은 알맞은 분량을 생기 넘치고 흥미롭게 나눔으로써 서로 배려하고 자극을 주며 격려한다. 나눔에는 항상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과 기쁨이 함께 하도록 한다.

 

〔공지 사항 및 안건 토의〕 회장은 회원들에게 벗의 공식적인 활동 및 공지사항을 보고하고 안건이 있으면 토의한 후 의결할 수 있다. 안건 토의는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요령 있게 한다.

 

〔영성 담당자 말씀 또는 소식지나 길잡이 등 문헌 공부〕 회장은 영성 담당자와 상의하여 소식지나 길잡이 또는 적당한 문헌 등을 마련하여 회원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 공부 방식과 시간은 전체 모임 시간을 고려하여 회원들이 협의하여 자유롭게 정한다. 영성 담당자가 참석할 경우에는 영성 담당자의 말씀으로 대체할 수 있다.

 

〔마무리〕 회장은 회원들에게 의결 사항을 다시 한번 알린다. 부회장은 회원들을 호명하여 출석을 확인한다. 마침 기도로는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길잡이 77항)를 교송으로바치고, 사제가 참석하는 경우에는 사제의 강복을 받는다.

 

15. 교구벗

 

〔구성〕 교구벗은 소속 벗들의 회장과 담당 사제가 위촉한 사람으로 구성한다. 교구벗은 정기적인 모임을 한다.

 

〔임원〕 교구벗은 사제를 영성 담당자로 두어야 하며, 그밖에 회장, 부회장, 총무, 회계 및 필요한 임원을 둔다. 교구는 소속 사제 중에서 영성 담당자를 임명하고, 교구벗의 평신도 회원 중에서 나머지 임원을 임명한다. 임원의 임기는 2년이고 연임할 수 있다. 임원들은 정기적인 임원 회의를 한다.

 

〔임무〕 교구벗의 주된 임무는 ① 길잡이의 제정 및 개정, ② 벗의 설립 인가 및 확장, ③ 지구벗의 설립 및 지원, ④ 하늘땅물벗과 관련한 교구 차원의 현안에 대한 대응 및 홍보, ⑤ 벗의 임원에 대한 교육 및 양성, ⑥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검토하는 일, ⑦ 하늘땅물벗 회원의 자질을 높이는 일, ⑧ 벗들의 생태 사도직 활동 경험을 서로 교환하고 연대하는 일, 특히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10월 4일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 등에 회원들이 함께 모여서 공동 기도나 공동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획하는 일, ⑨ 다른 교구 및 단체들과의 연대 등이다.

 

〔대의원회〕 교구벗은 필요한 경우 대의원회를 둘 수 있다.

 

〔위원회〕 교구벗은 필요한 경우 그 산하에 위원회를 둘 수 있다.

 

16. 지구벗

 

〔구성〕 교구벗은 벗들을 지구별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지구 단위로 여러 개의 벗을 모아서 지구벗을 설립할 수 있다. 지구벗은 소속 벗의 회장과 임원 1명씩 각 벗당 2명으로 구성한다. 지구벗은 격월(교구벗 모임과 다른 달)로 정기적인 모임을 한다.

 

〔임원〕 지구벗은 사제를 영적 지도자로 임명해야 하며, 그 밖에 회장, 부회장, 총무, 회계를 둔다. 지구벗의 영적 지도자는 교구벗의 영적 지도자와 소속 벗들의 영적 지도자들이 협의하여 정한다. 회장, 부회장, 총무, 회계는 지구벗 모임에서 회원들이 선출하며, 임기는 2년이고 연임할 수 있다.

 

〔임무〕 지구벗의 주된 업무는 ① 하늘땅물벗과 관련한 지구 차원의 현안에 대한 대응, ② 소속 벗들의 임원이 그들의 임무를 충실히 지키고 벗을 바르게 운영하도록 고무하고 관리하는 일, ③ 모든 회원이 생태 사도직 활동 의무를 완수하도록 독려하고 확인하는 일, ④ 벗의 확장과 회원 모집에 힘쓰도록 격려하는 일, ⑤ 강제 퇴회 결정에 대한 재심 등이다.

 

〔지구벗이 구성되지 않은 경우〕 지구벗에 소속하지 않는 ‘벗’은 교구벗에 직속하고, 교구벗이 지구벗의 임무를 수행한다.

 

17. 자금

 

〔자금 관리의 독자성〕 모든 벗은 자체의 운영 자금을 관리하는 권한을 가지며, 동시에 그 벗의 부채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책임을 진다.

 

 

제5장 활동

 

 

18. 생태적 생활 양식

 

하늘땅물벗 회원의 생태 사도직은 가치관과 생활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소수의 과도한 소비 행태는 최소한을 소비하며 사는 다수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소비주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의 미래를 위협한다.

우리 자신이 과도한 소비나 불필요한 낭비와 같은 개인적 습성을 고치지 않은 채 관념적으로만 생태적 변화를 운운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나 다름없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개인의 생활방식이 변화하는 데서 비롯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환경의 황폐화 문제가 사회와 환경, 나아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지속할 수 없는 우리의 생활양식과 현재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11]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작은 일상적 행동으로 피조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고결한 일”이라고 우리를 격려하신다.[12]

우리는 창조 질서 보존을 위한 우리의 활동을, 개인적으로 실천하기 쉬운 생활 주변의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본당 공동체, 지역 사회와 같은 공동체적 차원으로 넓혀야 한다.

 

19. 일상생활에서의 활동

 

하늘땅물벗 회원은 환경 보호에 직접적이고도 큰 영향을 주는 활동인 ‘즐거운 지구 살리기 운동’을 실천해야 한다. 즐거운 지구 살리기 운동을 통하여 대중교통, 먹을거리, 일회용품, 물, 에너지 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천을 할 수 있다.

가령 자전거를 타거나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기,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 멀리하기, 장바구니나 개인 컵 사용하기 등을 실천할 수 있으며, 세수나 양치할 때 물 받아 쓰기, 절수형 샤워기로 교체하기, 빨래 모아 세탁하기 등 물을 아끼는 다양한 노력도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회원들이 본당과 집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생태사도직 활동은 너무나도 많다.

또한 회원들은 생태사도직을 알리고 필요한 정보를 얻으며 회원을 확대하는 일에 현대의 매체들을 지혜롭게 활용한다. 모임을 하지 않을 때에도 생태환경에 관심을 두고 메신저 서비스를 통하여 벗님들 간에 교류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SNS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생태 사도직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자신의 활동을 알린다.

그리고 생태 문제와 관련한 교회 안팎의 온오프라인 서명 운동이나 설문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부록1] 한국 천주교 주교단 특별 사목 교서 실천 지침 참조)

 

20. 본당 공동체에서의 활동

 

하늘땅물벗 회원이 몸담은 교회 공동체는 ‘생태적 삶을 사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따라서 회원들은 그러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할 의무가 있다. 우선 ‘성당 담장 없애기’는 매우 중요하고 상징적인 활동이다. 교회의 담장이나 나무 울타리를 없애고 초록 쉼터를 조성하여 개방하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성당의 모습을 만들 수 있고, 교회의 중요한 사명인 선교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또 성당 내에 정기적으로 ‘아나바다 장터’를 열어 본당 신자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환경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13] 본당 주변의 노는 땅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길러 먹을 수도 있다. 본당에 가톨릭 농민회 회원들의 생명 농산물 직거래 장터(우리농 매장)를 마련하는 것도 환경과 우리 농촌 살림이 결합하는 좋은 실천 사례로서, 지속 가능한 농업을 격려하고 지원할 수 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있는 본당은 성당, 사무실, 사제관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신자들도 각자의 집에 미니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수 있다. 바이오 디젤 연료를 만들기 위한 폐식용유 수거 활동도 회원들이 본당 신자들과 함께 실천하기에 좋다. 신자들은 매주 성당에 올 때 일주일 동안 사용한 폐식용유를 가져와 성당 수거함에 모으고, 이것으로 바이오 디젤 연료를 만들면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부록1] 한국 천주교 주교단 특별 사목 교서 실천 지침 참조)

 

21. 지역 공동체에서의 활동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환경 위기는 지역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가장 지역적인 일이 가장 지구적인 일이다.

하늘땅물벗 회원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환경오염원이 없도록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할 수 있다. 주변에 유해 화학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이 있는지, 신규 골프장 건설과 쓰레기 소각장, 불법 소각 행위, 물을 오염시키고 산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개발 행위가 있는지 잘 살펴보고, 생태적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핵발전소 문제 등을 파악하며, 그런 환경파괴 행위가 있다면 회의에서 논의하고, 공동의 행동 계획을 만들어 대응할 수 있다.

지역의 환경 현안들은 지역민과의 연대가 중요하다. 특히 지역 내 이웃 종교나 환경 문제에 종사하는 시민·사회단체 혹은 생태운동 단체들과 함께함으로써 더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생태문제와 관련이 있는 다양한 사회적 생태운동에 연대하여 참여한다면 환경정책의 변화에 국제적, 국가적, 지역적, 사회적 영향력을 더 크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부록1] 한국 천주교 주교단 특별 사목 교서 실천 지침 참조)

 

22. 연대 활동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14] 우리는 자연 세계의 일부로서 끊임없이 자연과 교감하며 우리의 생명은 그것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 그러하기에 자연세계에 해를 입히는 것은 간접적으로 우리 자신과 모든 인류에 해를 입히는 것이다. 「찬미받으소서」가 제안하는 통합 생태론은 인간의 사회적 차원을 존중하며 공동선의 개념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15] 공동선의 원리는 필연적으로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되어,[16] 우리로 하여금 가난한 이들과 이 땅의 절규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하늘땅물벗 회원은 정의 평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에 연대함으로써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존이라는 사회 교리 가르침에 온전하게 다가갈 수 있다. 가톨릭 생태운동은 이성과 대화하는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하여 창조란 피조물 모두에게 유익함을 주려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 수 있다. 생태문제는 현세 인류의 행동과 미래 세대의 삶의 조건이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더욱 확실히 보여 준다. 기후 변화로 말미암은 기록적인 홍수와 태풍, 지진,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취약한 사회간접자본과 자원의 부족으로 더욱 위험에 처해 있다. 이로 말미암아 다치고 해를 입은 재난자에 대한 긴급 구호도 빈번히 요구되고 있다. 회원은 이들을 구호하는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연대 의식을 보여 줄 수도 있고, 교회 내외 관련 단체의 활동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연대할 수도 있다. 또한 지구 생태를 위한 노력에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와의 연대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23. 세상의 변화

 

하늘땅물벗 회원은 이런 것들을 실천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까 하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생태 사도직 수행은 우리 사회에 선(善)을 퍼뜨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결실을 가져올 수 있다.[17] 회원은 민들레 홀씨의 퍼짐과 같은 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쏟는 노력이 비록 눈에 잘 보이지 않더라도, 이는 하느님의 선(善)을 확산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생태사도직 실천을 통해 우리는 신앙인의 자존감을 회복하며, 삶의 깊이가 더해지면서 하느님이 창조한 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고 살 만한 곳임을 깨닫고 체험하게 된다. 회원은 매일매일 하는 작은 생태적 실천을 통해 죽어 가는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 확신해야 한다.

 

24. 하늘을 위한 실천

 

〔에너지 절약〕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고 온실가스 방출을 줄이는 일은 지구의 기후를 안정화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 외에도, 물건을 생산하고 유통, 판매, 폐기하는 전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사용된다. 그러므로 모든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고 아껴 쓰는 것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길이다.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은 전기 코드를 빼 두자. 절전형 전구 등 에너지 효율이 좋은 제품을 사용하자. 단열, 보온 등을 통하여 겨울철 적정 실내온도 20도, 여름철 적정 실내온도 26도를 유지하자. 에어컨보다는 선풍기, 선풍기보다는 부채를 사용하고, 겨울철에는 내복을 입자. 한번 산 물건은 오래 사용하고 재사용과 재활용을 생활화하자.

 

〔햇빛 에너지〕 화력 발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원자력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은 지구온난화 방지는커녕 더욱 큰 파국을 불러올 뿐이다.[18] 대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재생 가능하고 독성 폐기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하느님 에너지 정책(태양, 바람)을 촉구해야 한다. 핵발전, 화력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과 시스템에 저항하고, 개인과 본당 차원에서 태양열, 풍력 발전 중심의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마련해 보자.

 

〔에너지 안식일〕 일주일에 하루는 ‘에너지 안식일’로 지내는 것이 좋다. 텔레비전과 조명을 끄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촛불 켜는 밤’을 지내보자. ‘에너지 안식일’에는 쇼핑과 외출을 삼가고, 하느님과 창조물과 우리 자신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전기와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음식도 간소하게 만들어 먹자. 에너지 안식일을 지키며 절약한 비용은 환경 파괴로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자.

 

〔우리 농산물〕 음식이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제철이 아닌 농산물을 재배하거나 농산물을 장거리 운송할 때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마련이다. 비행기 등으로 장거리 수송된 먹을거리를 피하고, 지역 농민이 생산한 제철 농산물을 선택하자. 축산에도 매우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므로 가능한 한 육류 및 유제품 섭취를 줄이자. 대형 상점 대신 동네 시장이나 우리농 직매장,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하자.

 

〔미세 먼지〕 대기오염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미세 먼지는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생활의 질을 저하한다. 적극적으로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꾸는 등 주변 환경을 푸르게 가꿔 보자. 가족들끼리 ‘우리 가족 식물 키우기’를 실천해 보자. 석탄 화력 발전, 자동차 배기가스 등 대기오염원이 되는 시설물의 개선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자. 나아가 지구의 허파인 열대우림의 파괴나 사막화에 대해서도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방지 노력을 기울이자.

 

〔자동차 배기가스〕 자동차 배기가스는 가장 큰 일산화탄소 배출원일 뿐 아니라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양의 오염 물질이 배출되어 대기를 오염시킨다. 차체를 만드는 철강 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많은 유독성 폐기물을 방출한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다니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승용차 함께 타기를 실천하고, 연비와 배출 가스를 고려하여 최대한 친환경적인 차량을 선택하자. 자동차 공회전을 하지 않도록 하자.

 

〔옷〕 화학섬유 옷은 만들 때는 물론이고 버린 옷을 소각할 때도 대기에 각종 유해 물질을 방출한다. 천연섬유인 면의 경우는 재배할 때 살충제나 고엽제 같은 다량의 농약을 사용한다. 또한, 드라이클리닝 용제는 생물 분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환경과 몸속에 축적되어 피해를 준다. 새 옷을 사기 전에 꼭 자신한테 필요한지 숙고하고, 안 입는 옷은 잘 손질하여 이웃끼리 나누자. 유기농 방식으로 지은 면제품과 화학 염료를 사용하지 않은 천연 염색 제품을 찾아보자.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는 옷은 되도록 사지 말자.

 

25. 땅을 위한 실천

 

〔땅 살리기〕 땅은 거룩한 것과 죄스러운 것 모두를 품어 안는 자비로운 생명의 어머니이다. 우리는 지금 농약과 쓰레기, 아스팔트로 대지의 숨통을 막으며 땅을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도시는 생태적인 면에서 사막이 되어 가고 있다. 주말농장이나 주변의 남는 땅, 혹은 아파트 베란다에 생태텃밭을 만들어 보자. 또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더욱더 어려운 삶을 사는 농촌과 농민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며 땅 살림을 위한 자신의 약속을 정해 보자.

 

〔소박한 밥상〕 육류는 생산 과정에서 곡류보다 에너지와 물을 더 많이 소비한다. 육식 중심 식생활 문화의 확산은 세계 기아 원인 중 하나이며, 수많은 동물의 생명권을 저버리는 구제역, 광우병 등을 초래한다.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삶을 위해 육류 소비를 줄이고 소박한 밥상을 만들어 보자.

 

〔쓰레기 줄이기〕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는 강, 바다로 흘러가면 수질 오염, 태우면 대기 오염, 묻으면 토양 오염을 일으킨다. 깨끗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우선 쓰레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생활 속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분리수거 등을 통하여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 우리 가정에는 필요 없는 것이 다른 가정에는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한 장소에 모아서 바자회나 아나바다 장터 등을 통해 정기적인 나눔을 실천하자.

 

〔음식물〕 생명의 밥상 차림은 올바른 장보기에서 시작한다. 장을 보러 가기 전에는 집에 남아 있는 식품을 확인하고 살 물건을 적어서 장바구니를 들고 가자. 식품첨가물이 들어 있는 가공식품과 즉석식품 및 유전자조작 식품을 피하고 과대 포장된 제품을 사지 말자. 그리고 음식은 필요한 만큼 적당히 조리하고 먹을 만큼만 덜어서 남기지 않고 먹도록 하자.

 

26. 물을 위한 실천

 

〔물 절약〕 물은 생명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귀중한 자원이다.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생각하면서 물을 아껴 사용하자. 양치할 때는 양치 컵을 사용하고, 쓸 만큼만 물을 받아서 사용하자. 쌀을 씻은 물인 쌀뜨물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빗물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매일 아침 처음 물을 사용할 때, 생명을 살리는 물에 감사하는 짧은 기도를 바치자.

 

〔강 살리기〕 우리는 강에서 마실 물을 얻는다. 무분별하게 강의 흐름을 방해하는 행위나 수질을 오염시키는 행위는 강을 죽이고 숱한 생명을 말살하는 죄악이다. 그 결과는 결국 인간에게 미친다. 4대강 사업 등의 난개발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강을 생태적으로 보존해야 한다. 강과 물의 오염을 막기 위하여 세탁이나 설거지, 청소, 목욕, 양치 등을 할 때 적정한 양의 저공해 세제를 이용하자. 세제 대신 미생물 제제(EM 등)를 활용하자. 오수가 우수관으로 나가는 것은 아닌지 잘 확인하자. 튀김 기름을 개수대에 버리지 말고, 될 수 있으면 기름에 튀기는 음식 조리법을 사용하지 말자.

 

〔바다〕 바다는 생명의 고향이며, 지구 생태계를 품어 주는 그릇이다. 바다는 온실가스를 흡수하고, 물 순환의 기반이 되며, 어류 등 수많은 생명의 집이 된다. 그런 바다가 각종 오염에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닷가로 여행을 가거나 휴가를 보낼 때 쓰레기를 남기지 말자. 낚시 도구나 각종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거나 내버려 두지 말자. 분리배출이 곤란한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폭죽 등을 사용하지 말자. 캠프파이어를 할 때 모래밭에서 석유 등을 사용하지 말자. 물놀이를 하고 난 뒤에는 물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주변의 쓰레기를 줍자. 그리고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된 화장품이나 생활용품 등을 사용하지 말자.

 

27. 벗을 위한 실천

 

〔다양한 생물〕 우리 지구에는 인간 이외에도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그런데 해마다 수천 종의 동물과 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생태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균류, 해조류, 벌레 무리, 파충류, 그리고 셀 수 없이 다양한 미생물이 필요하다.[19] 국립공원을 비롯한 산과 숲, 습지, 강과 호수를 잘 보존하고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자. 무분별한 개발을 경계하자. 겨울철 먹이가 부족할 때는 야생 동물을 위한 먹이를 놓아두고, 숲속에 새집을 많이 만들어 주자. 무엇보다도 내 주변의 자연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피자. 또한, 다국적기업이 대량생산을 위해서 유전자 변형을 통해서 만드는 유전자조작(GMO) 작물은 생물종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멸종을 초래한다. 유전자조작은 창조질서를 교란하여 생태계를 파괴하고 우리의 건강을 해칠 뿐이다. 기아문제는 유전자조작을 통하여 해결할 수 없으며, 하느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나눔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윤리적 소비〕 물건을 살 때는 실용성이나 가격을 기준으로 사기보다 환경과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윤리적 소비의 관점에서 사야 한다. 천연자원 사용을 줄이고, 폐기물과 오염물의 배출을 최소화한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자. 우리 사회에 의식 있는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재벌 대기업들에 사회적 공헌과 책임에 대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공정 무역〕 공정 무역은 지속 가능한 소비를 지향한다. 미래 세대의 요구를 희생시키지 않고 현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소비 방식을 고민해 보자. 우리 주변에서 공정 무역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아름다운 가게’, 생활협동조합 등)을 찾아보고 착한 소비를 선택하자.

 

〔소박한 생활〕 산업 문명이 발전하여 남는 농산물은 늘어났지만, 오늘날 전 세계 인구 중 8억 명의 사람들은 굶주림을 겪고 있다. 음식물이나 생활용품을 쉽게 버리는 삶의 태도를 버리고, 최소한의 물건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소박한 삶을 선택하자.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고, 지역 농민들의 삶과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는 대규모 초국적 기업의 상업적 농산물을 거부하고,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는 생명 농업으로 생산된 국산 제철 유기농 먹을거리를 선택하자.

 

〔생태 교육〕 생태 정의를 위해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위한 환경교육이 중요하다. 학교의 생태 교육을 강화하고, 생태 교과를 필수 교과로 지정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하자.

  

 

 

제6장 교회의 가르침

 

 

하늘땅물벗의 영성과 활동은 가톨릭교회에서 제시하는 가르침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이 장에는 하늘땅물벗 회원들에게 영성과 활동의 원천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성경과 보편 교회의 문헌을 발췌하여 정리하였다. 회합 때나 평소에 이를 자주 읽고 묵상하면서 생태 영성과 생태 활동에 동력이 되는 원천적 가르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성경

 

28. 천지와 인간의 창조(창세 1,20-2,3; 2,15)

 

20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  21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2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 곧 집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25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29. 안식년(레위 25,1-7)

 

1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으로 너희가 들어가면, 그 땅도 주님의 안식을 지켜야 한다.  3 너희는 여섯 해 동안 밭에 씨를 뿌리고, 여섯 해 동안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두어라.  4 그러나 일곱째 해는 안식년으로, 땅을 위한 안식의 해, 곧 주님의 안식년이다. 너희는 밭에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포도원을 가꾸어서도 안 된다.  5 너희가 수확한 다음에 저절로 자란 곡식을 거두어서도 안 되고, 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 저절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 된다. 이것이 땅의 안식년이다.  6 안식년에 땅에서 나오는 것이 너희뿐만 아니라 너희의 남종과 여종과 품팔이꾼, 그리고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거류민의 양식이 될 것이다.  7 또한 너희 가축과 너희 땅에서 사는 짐승까지도 땅에서 나는 온갖 소출을 먹을 것이다.’”

 

30. 희년(레위 25,8-22)

 

8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11 이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저절로 자란 곡식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 저절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 된다.  12 이 해는 희년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해다. 너희는 밭에서 그냥 나는 것만을 먹어야 한다.  13 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  14 너희가 동족에게 무엇을 팔거나 동족의 손에서 무엇을 살 때, 서로 속여서는 안 된다.  15 너희는 희년에서 몇 해가 지났는지 헤아린 다음 너희 동족에게서 사고, 그는 소출을 거둘 햇수를 헤아린 다음 너희에게 팔아야 한다.  16 그 햇수가 많으면 값을 올리고, 햇수가 적으면 값을 내려야 한다. 그는 소출을 거둘 횟수를 너희에게 파는 것이다.  17 너희는 동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18 너희는 나의 규칙들을 실천하고, 나의 법규들을 지키며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땅에서 평안히 살게 될 것이다.  19 그리고 땅이 열매를 내주어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그곳에서 평안히 살게 될 것이다.  20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소출을 거두어서도 안 된다면, 우리가 일곱째 해에는 무엇을 먹으리오?′ 하고 너희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21 그러나 나는 여섯째 해에 나의 복을 베풀어 세 해 동안 먹을 소출이 나게 하겠다.  22 그래서 씨를 다시 뿌리는 여덟째 해에 너희는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다. 아홉째 해가 되어 그해 소출이 날 때까지 묵은 곡식을 먹게 될 것이다.’”

 

31.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시편 104)

 

1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지극히 위대하십니다.
고귀와 영화를 입으시고

2  빛을 겉옷처럼 두르셨습니다.

하늘을 차일처럼 펼치시고

3  물 위에 당신의 거처를 세우시는 분.
구름을 당신 수레로 삼으시고
바람 날개 타고 다니시는 분.

4  바람을 당신 사자로 삼으시고
타오르는 불을 당신 시종으로 삼으시는 분.

5  그분께서 기초 위에 땅을 든든히 세우시어
영영세세 흔들리지 않는다.

6  당신께서 대양을 그 위에 옷처럼 덮으시어
산 위까지 물이 차 있었습니다.

7  당신의 꾸짖으심에 물이 도망치고
당신의 천둥소리에 놀라 달아났습니다.

8  당신께서 마련하신 자리로
산들은 솟아오르고 계곡들은 내려앉았습니다.

9  당신께서 경계를 두시니 물이 넘지 않고
땅을 덮치러 돌아오지도 않습니다.

10  골짜기마다 샘을 터뜨리시니
산과 산 사이로 흘러내려

11  들짐승들이 모두 마시고
들나귀들도 목마름을 풉니다.

12  그 곁에 하늘의 새들이 살아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귑니다.

13  당신의 거처에서 산에 물을 대시니
당신께서 내신 열매로 땅이 배부릅니다.

14  가축들을 위하여 풀이 나게 하시고
사람들이 가꾸도록 나물을 돋게 하시어
땅에서 빵을,

15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술을 얻게 하시고
기름으로 얼굴을 윤기나게 하십니다.
또 인간의 마음에 생기를 돋우는 빵을 주십니다.

16  주님의 나무들,
몸소 심으신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이 한껏 물을 마시니

17  거기에 새들이 깃들이고
황새는 전나무에 둥지를 트네.

18  높은 산들은 산양들의 차지
바위들은 오소리들의 은신처.

19  그분께서 시간을 정하도록 달을 만드시고
제가 질 곳을 아는 해를 만드셨네.

20  당신께서 어둠을 드리우시면 밤이 되어
숲의 온갖 짐승들이 우글거립니다.

21  사자들은 사냥거리 찾아 울부짖으며
하느님께 제 먹이를 청합니다.

22  해가 뜨면 물러나서
제 보금자리로 들어가고

23  사람은 일하러,
저녁까지 노동하러 나옵니다.

24  주님, 당신의 업적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모든 것을 당신 슬기로 이루시어
세상이 당신의 조물들로 가득합니다.

25  저 크고 넓은 바다에는
수없이 많은 동물들이,
크고 작은 생물들이 우글거립니다.

26  그곳에 배들이 돌아다니고
당신께서 만드신 레비아탄이 노닙니다.

27  이 모든 것들이 당신께 바랍니다,
제때에 먹이를 주시기를.

28  당신께서 그들에게 주시면 그들은 모아들이고
당신 손을 벌리시면 그들은 좋은 것으로 배불립니다.

29  당신의 얼굴을 감추시면 그들은 소스라치고
당신께서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갑니다.

30  당신의 숨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십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리라.
주님께서는 당신의 업적으로 기뻐하시리라.

32  땅을 굽어보시니 뒤흔들리고
산들을 건드리시니 연기 내뿜네.

33  나는 주님께 노래하리라, 내가 사는 한.
나의 하느님께 찬미 노래 부르리라, 내가 있는 한.

34  내 노래가 그분 마음에 들었으면!
나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네.

35  죄인들은 이 땅에서 없어져라.
악인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마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할렐루야!

 

32.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로부터(시편 148)

 

1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로부터.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데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2  주님을 찬양하여라, 해와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반짝이는 모든 별들아.

3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위의 하늘아
하늘 위에 있는 물들아.

4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저들이 창조되었다.

5  그분께서 저들을 세세에 영원히 세워 놓으시고
법칙을 주시니 아무도 벗어나지 않는다.

6  주님을 찬미하여라, 땅으로부터.
용들과 깊은 모든 바다들아

7  불이며 우박, 눈이며 안개
그분 말씀을 수행하는 거센 바람아

8  산들과 모든 언덕들
과일나무와 모든 향백나무들아

9  들짐승과 모든 집짐승
길짐승과 날짐승들아

10  세상 임금들과 모든 민족들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판관들아

11  총각들과 처녀들도
노인들과 아이들도 함께

12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분 이름 홀로 높으시다.
그분의 엄위 땅과 하늘에 가득하고

13  그분께서 당신 백성 위하여 뿔을 세우셨으니
당신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당신께 가까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찬양 노래이어라.
할렐루야!

 

33. 세 젊은이의 노래(다니 3,57-88.56)

 

57 주님의 업적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58 주님의 천사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59 하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0 하늘 위 물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1 주님의 군대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2 해와 달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3 하늘의 별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4 비와 이슬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5 바람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6 불과 열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7 추위와 더위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8 이슬과 소나기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69 서리와 추위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0 얼음과 눈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1 밤과 낮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2 빛과 어둠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3 번개와 구름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4 땅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5 산과 언덕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6 땅에서 싹트는 것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7 샘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8 바다와 강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79 용들과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80 하늘의 새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81 들짐승과 집짐승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82 사람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83 이스라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84 주님의 사제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85 주님의 종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86 의인들의 정신과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87 거룩한 이들과 마음이 겸손한 이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88 하난야와 아자르야와 미사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우리를 저승에서 구해 주시고

죽음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셨으며

불길이 타오르는 가마에서 건져 내시고

불 속에서 건져 내셨다.

 

56  하늘의 궁창에서 찬미받으소서.

당신은 찬송과 영광을 영원히 받으실 분이십니다.

 

34.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마태 6,25-33)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5. 고난과 희망과 영광(로마 8,18-28)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27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36. 그리스도 찬가(콜로 1,15-20)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교황청 문헌

 

37. 생태계의 위기는 도덕 문제(「생태계의 위기」, 7항)

 

7. 생태학적 문제의 근저에 깔려 있는 도덕적 암시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심각한 징후는 생명 존중의 결여입니다. 이는 수많은 형태의 환경 오염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흔히들 생산에 대한 관심이 노동자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고 경제적인 관심이 개인과 전 국민의 선익에 우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환경의 오염이나 파괴는 때때로 순전히 인간 경시에 이르고 마는 비자연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세계관의 귀결입니다.또 다른 차원에서 생태계의 민감한 균형은 무절제한 동식물의 남획과 무분별한 자연 자원의 개발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비록 발전과 복지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인류에게 손실을 미친다는 사실이 직시되어야만 합니다.마지막으로 우리는 오로지 깊은 관심을 갖고 생물학적 연구의 엄청난 가능성들을 주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이나 비도덕적인 새로운 형태의 동식물 생명의 개발로 말미암아 야기될 수도 있는 생물학적 혼란을 평가할 만한 입장에 있지 않으며, 인간 생명 그 자체의 기원에 관한 용납될 수 없는 실험에 대해서도 아직 무엇을 얘기할 만한 처지에 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처럼 미묘한 영역에 있어서 근본적인 윤리규범에 대한 무관심이나 그 규범의 거부는 인류를 바로 자멸의 지경에 이르게 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생명의 존중, 그 무엇보다도 인간 존엄성의 존중은 건실한 경제, 산업 및 과학발전을 위한 궁극적인 지도 규범입니다.생태학적 문제의 복합성은 그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정당한 자율성과 특수 역량을 존중하면서도 적절하고도 지속적인 해결책 모색을 위한 연구를 지도할 수 있는 근본원리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들은 평화로운 사회 건설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입니다. 평화로운 사회는 결코 생명에 대한 존중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생명 존중이 바로 모든 피조물의 보전이라는 사실을 경시할 수 없습니다.

 

38. 생태계 위기는 우리 모두의 책임(「생태계의 위기」, 15항)

 

15.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지적한 대로, 그 다양한 측면들은 개인과 민족과 국가와 국제 공동체에 속하는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일치된 노력의 요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모든 노력과 더불어 손을 맞잡고 나아갈 뿐 아니라 그러한 노력들을 구체적으로 북돋아 주고 강화시켜 줍니다. 생태계의 위기를 평화의 추구라는 한층 더 폭넓은 맥락에서 볼 때에, 우리는 지구와 그 환경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에 기울여야 할 관심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가 우리에게 하는 말은 곧 우주에는 마땅히 존중하여야 할 질서가 있으며 자유로운 선택의 역량을 부여받은 인간은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하여 이 질서를 보전하여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태계의 위기는 도덕 문제라는 말씀을 저는 거듭 되풀이해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특정한 종교적 신념을 지니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공동선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건강한 환경의 회복에 기여하여야 할 자신의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환경의 회복에 기여하여야 할 자신의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안에는 명확한 질서와 조화가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부름받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피조물 안에서의 자기 책임은 물론 자연과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가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 앞에 열려 있는 교파 간 종교간 협력의 광활한 영역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39. 피조물 보호는 평화의 조건(「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 14항)

 

14.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 모든 사람이 하느님과 인간과 피조물 전체의 불가분의 관계를 깨달으면 선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화는 더욱 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계시의 빛과 교회의 전통에 충실하여 저마다 여기에 공헌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부의 창조 사업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 만물을”(콜로 1,20) 하느님과 화해시키신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의 빛으로 우주와 그 놀라운 장관을 바라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에게 거룩한 영을 보내시어 역사의 과정을 이끄시고 구세주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시는 날을 앞당기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날 정의와 평화가 영원히 머무는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하여 자연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환경 보호는 우리가 새롭고 조화로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절박한 과제입니다. 또한 환경 보호는 모든 이를 위한 더 나은 미래의 전망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 주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지도자들과 인류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의 보호와 평화 건설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모든 신자들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려,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라는 절박한 호소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40.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찬미받으소서」, 11항)

 

11.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와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 성인은 해와 달 또는 가장 작은 동물들을 바라볼 때마다 모든 피조물과 함께 찬미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성인은 모든 피조물과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꽃 앞에서 설교하며 “꽃이 마치 이성을 지닌 듯 주님을 찬미하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그의 반응은 지적 평가나 경제적 계산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모든 피조물은 사랑의 유대로 자신과 하나 되는 누이였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돌보아야 한다는 소명을 느낀 것입니다. 그의 제자인 보나벤투라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는 만물의 공통 원천에 관한 성찰로 더 큰 경외심에 가득 차 아무리 하찮은 피조물이라도 ‘형제’나 ‘누이’로 부르셨습니다.” 그러한 확신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선택에 영향을 주기에 순진한 낭만주의로 폄훼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연과 환경에 접근하면서 이러한 경탄과 경이에 열려 있지 못하고, 세상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형제애와 아름다움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각적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는 지배자, 소비자, 무자비한 착취자의 태도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것과 내밀한 일치를 느낀다면 절제와 배려가 곧바로 샘솟게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청빈과 검소는 피상적인 금욕주의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것입니다. 곧 실재를 단순히 이용하고 지배하기 위한 대상으로 삼는 것을 단념하는 것입니다.

 

41. 새로운 보편적 연대의 필요성(「찬미받으소서」, 14항)

 

14. 그래서 저는 우리 지구의 미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에 관하여 새롭게 대화를 나눌 것을 긴급하게 호소합니다. 모든 이가 참여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당면한 환경 문제와 인간이 일으킨 그 근원은 우리 모두에게 관련이 있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은 이미 오랫동안 발전을 이루어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단체가 수립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환경위기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많은 노력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힘 있는 자들의 반대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사람들의 관심 부족 때문입니다. 신자들 가운데에서조차도 해결책을 찾는 데 방해가 되는 태도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문제 자체의 부인과 무관심, 냉정한 체념이나 기술적 해결에 대한 맹목적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보편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는 남아프리카 주교님들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인간이 저지른 피해를 복구하려면 모든 이의 재능과 참여가 필요합니다.”(남아프리카 주교회의, ‘환경위기에 관한 사목 성명’, 1999)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신의 문화, 경험, 계획, 재능으로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피조물 보호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42. 오염, 쓰레기, 버리는 문화 (찬미받으소서20, 22)

 

20.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오염들이 있습니다.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노출은 건강에,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의 건강에 광범위한 악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찍 사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요리와 난방에 사용하는 연료에서 배출되는 다량의 연기를 흡입하면 병에 걸리게 됩니다.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염도 있습니다. 이는 교통, 공장 매연, 토양과 물의 산성화 물질, 비료,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일반적인 농업용 독극물을 통하여 발생됩니다. 상업적 이익과 관련된 기술이 이러한 문제들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기술은 문제가 얽히고설킨 관계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때로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지만 다시 새로운 문제를 일으킵니다.

22. 이러한 문제들은 버리는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버리는 문화는 물건을 쉽게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생산된 종이의 대부분은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집니다. 우리는 자연 생태계의 순환 과정이 우리의 모범이 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식물은 초식 동물들이 먹는 영양분을 합성합니다. 그다음에 초식 동물들은 육식 동물의 먹이가 됩니다. 이렇게 하여 상당히 많은 양의 유기 배설물이 배출되어 새로운 식물들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산업 체계는 생산과 소비의 과정 끝에 나오는 쓰레기와 부산물의 처리나 재사용 능력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순환적 생산 방식을 채택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현재와 미래 세대들을 위하여 자원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며, 재생 불가능한 자원 사용의 최소화, 소비 절제, 개발 효율의 극대화, 재사용, 재활용을 요구합니다.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지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버리는 문화에 맞서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극히 한정된 진척만을 이루었을 뿐입니다.

 

43. 기후 변화의 폐해(「찬미받으소서」, 25항)

 

25.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입니다. 수십 년 안에 아마도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 가난한 이들은 온난화와 관련된 현상에 특별한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의 생계는 자연 보호 지역과, 농업과 어업과 삼림업과 같은 생태계에 관련된 일에 크게 의존합니다. 이들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거나 자연재해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금이나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회 복지나 사회 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물과 식물이 이주하게 되면 가난한 이들 또한 생계에 타격을 받아 자신들과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큰 불안감을 안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자연 훼손으로 악화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이주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제 협약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이 포기한 삶에 따른 손실을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온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비극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제자매가 관련된 이 비극에 대한 우리의 부실한 대응은 모든 시민 사회의 기초인, 우리 이웃에 대한 책임감의 상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44. 물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찬미받으소서」, 30항)

 

30.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질은 계속해서 악화되어 가고 있음에도, 어떤 지역에서는 이 부족한 자원을 민영화하려는 추세가 나타나 물이 시장 논리에 지배되는 상품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권입니다.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며, 바로 그래서 다른 인권들을 행사하는 데에 전제 조건이 됩니다. 물을 마실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이 세상은 커다란 사회적 부채를 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침해할 수 없는 존엄에 맞갖은 생명권이 부인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을 마련해 주려고 재정지원을 확대하면 그 부채가 어느 정도 경감됩니다. 그렇지만 선진국뿐만 아니라 많은 물을 보유하고 있는 개발도상국 안에서도 물의 낭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물문제가 어느 정도 교육과 문화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불평등이 심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행위의 심각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5. 생물 다양성의 감소 (찬미받으소서, 36, 42)

 

36.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앞을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쉽고 빠른 금전적 이익만을 얻으려고 할 때 그 누구도 생태계 보존에 참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기적인 무관심으로 야기된 손해 비용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보다 훨씬 큽니다. 어떤 생물종이 소멸되거나 심각한 해를 입게 되면 그에 따른 손실은 막대합니다. 그래서 환경 훼손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현재와 미래의 인류에게 떠넘긴 채로 상당한 이익만을 얻으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가장 심각한 불의 앞에 침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42. 생태계의 기능을 더 잘 이해하고, 환경의 중요한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의 적절한 분석을 목표로 하는 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사랑과 존경으로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피조물인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역은 이 가족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 생물종들을 특별히 보살피면서 보호 계획과 전략을 개발하여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생물종들을 철저히 관리하게 해야 합니다.

 

46. 세계적 불평등 (찬미받으소서, 48-49)

 

48. 인간 환경과 자연환경은 함께 악화됩니다. 우리가 인간과 사회의 훼손의 원인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환경 훼손에 적절히 맞서 싸울 수 없습니다. 사실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일상생활의 체험과 과학 연구는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든 환경 훼손의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물고기 개체 수의 감소는 다른 생계 수단이 마땅치 않은 영세 어민들에게 특히 어려움을 주게 됩니다. 수질 오염은 특히 생수를 살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해수면 상승은 주로 해안 주변에 사는 달리 갈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의 이러한 불균형의 영향은 많은 가난한 이들의 이른 사망, 자원의 결핍으로 일어나는 분쟁, 국제적 논의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많은 다른 문제들에서 나타납니다.

49. 특히 소외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외된 이들은 수십 억 명에 이르러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이들은 오늘날 국제적 정치와 경제 토론에서 언급되고는 있지만, 그들의 문제는 거의 의무감에 못 이겨 또는 미미하게 다루는 부록으로 제시되거나, 아니면 그저 부수적 피해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는 인상을 빈번히 줍니다. 사실,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서 보면 소외된 이들의 문제는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그 이유는 많은 전문가, 여론 선도자, 통신 매체, 권력의 핵심들이 부유한 도시 지역에 위치하여 가난한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가난한 이들의 문제에 거의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발전에 따른 편안한 위치에서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삶의 질을 누리며 생활하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만남의 결여는 종종 도시의 해체로 촉발되며 양심을 무디게 하고 현실에 있는 것을 무시하는 편향된 분석을 낳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말로는 ‘환경’을 옹호하면서도 이러한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접근은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관한 논의에 결부시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

 

47. 하느님과 이웃과 지구와의 관계(찬미받으소서, 66)

 

66. 창세기에 나오는 상징적이고 서사적인 고유한 언어로 표현된 창조 이야기는 인간의 실존과 그 역사적 실재에 대한 깊은 가르침

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 우리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세 가지 핵심적인 관계는 이 세상과 우리 안에서 깨어졌습니다. 이러한 불화가 죄입니다. 창조주와 인류와 모든 피조물의 조화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여기고 피조물로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아서 깨어졌습니다. 결국 이는 이 땅을 “지배”(창세 1,28)하는 우리의 임무, 곧 “그곳을 일구고 돌보는”(창세 2,15) 임무를 왜곡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이 맺은 본디의 조화로운 관계가 충돌하게 되었습니다(창세 3,17-19 참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모든 피조물과 체험하신 그 조화가 이러한 불화의 치유로 여겨진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보나벤투라 성인께서는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모든 피조물과 맺으신 보편적 화해를 통하여 어느 모로 본디의 순수 상태로 돌아가려 하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현재 상황에서 죄는 전쟁,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과 학대, 가장 취약한 이들의 유기, 자연에 대한 공격에서 모든 파괴적인 힘으로 드러납니다.

 

48. 인간은 세상을 일구고 돌보아야 하는 책임(찬미받으소서, 67)

 

67.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우리에게 이 땅에 대한 지배가 부여되었다는 사실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강력하게 부인해야 합니다. 성경 구절은 그 맥락 안에서 올바른 해석학을 통하여 읽어야 합니다. 성경 구절은 우리가 세상이라는 정원을 ‘일구고 돌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창세 2,15 참조). ‘일구다’라는 말은 밭을 경작하고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하며, 감독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모든 공동체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풍요로운 땅에서 얻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보호하고 후손들을 위하여 이 땅이 계속해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49. 이 세상의 궁극적인 목적 (찬미받으소서, 83)

 

83. 이 세상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의 충만 안에 놓여 있습니다. 이 충만은 모든 보편적 성숙의 중심이 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인간의 모든 무책임한 전제적 지배에 대한 또 다른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피조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품으시고 비추시는 초월적 충만 안에서 우리와 더불어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공동의 도착점, 곧 하느님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성과 사랑이 부여된 인간은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이끌려 모든 피조물을 그들의 창조주께 인도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50. 창조의 조화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전하는 메시지 (찬미받으소서, 85)

 

85. 하느님께서는 소중한 책을 쓰셨습니다. 이 책의 “글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피조물들입니다.” 캐나다 주교들은 하느님의 이러한 계시에서 배제된 피조물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가장 뛰어난 장관에서부터 가장 작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경탄과 경외의 끊임없는 원천입니다. 이는 또한 하느님의 끊임없는 계시입니다.” 일본 주교들도 매우 시사하는 바가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존재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아채는 것은 하느님 사랑과 희망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조물에 관한 이러한 관상은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가르침을 발견하게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 피조물에 관한 관상은 메시지를 듣고, 역설적인 무언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담겨 있는 고유한 계시와 더불어, 작렬하는 태양과 드리워진 어둠 안에도 하느님께서 계시하시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계시에 주의를 기울이면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과 이루는 관계 안에서 자신을 깨닫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세상을 표현하면서 나 자신을 표현합니다. 나는 세상의 거룩함을 헤아려 보면서 나 자신의 거룩함을 살펴봅니다.”

 

51. 서로 형제자매로 일치되는 보편적 친교 (찬미받으소서, 89, 92)

 

89. 이 세상의 피조물들에 주인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지혜 11,26). 이것이 한 분이신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일부로서 우리는 모두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일종의 보편 가정,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며 겸손한 존중으로 우리를 채우는 숭고한 친교를 함께 이룬다는 확신의 근거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육신을 통하여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긴밀하게 결합시켜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토양의 사막화를 마치 우리 몸이 병든 것처럼 느끼고 동식물의 멸종을 우리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낍니다.”

92. 또한 보편적 친교에 마음을 열면, 이러한 형제애에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제외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잔혹함은 언제나 어느 모로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여서 동물을 학대하도록 이끄는 비열함은 곧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 어떤 피조물에 대한 것이든 모든 학대는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현실의 그 어떤 측면이라도 소홀히 한다면, 우리가 큰 사랑을 한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평화와 정의 그리고 피조물 보호는 서로 철저하게 연결된 주제입니다. 이를 분리하여 개별 주제로 다루면 결국 환원주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관련됩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 사랑으로 서로 엮여서 형제자매로 일치되어 멋진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모든 피조물을 위한 것으로, 우리를 형제인 태양, 자매인 달, 형제인 강, 어머니인 대지와 온유한 애정으로 하나가 되게 해 줍니다.

 

52.재화의 공통적 목적(찬미받으소서, 93)

 

93. 오늘날 우리는 신앙인이든 아니든 모두 지구가 본질적으로 공동 유산이므로 그 열매는 모든 이에게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신앙인들에게 이는 창조주에 대한 충실의 문제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생태적 접근은 가장 취약한 이들의 기본권을 배려하는 사회적 관점을 포함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유재산이 재화의 보편 목적에 종속된다는 원칙, 그리고 이에 따른 공동 사용 권리는 사회 활동의 ‘황금률’이고 “윤리적 사회적 질서 전체의 제1원리”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사유 재산권을 절대적이거나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모든 형태의 사유 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였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 가르침을 강조하시며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땅을 주시어 아무도 제외되거나 특권을 누리지 않고 그 모든 성원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매우 의미 있고 강력한 말씀입니다. 교황께서는 “인격적 사회적 권리, 경제적 정치적 권리, 그리고 국가들과 민족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신장시키지 않는 개발 유형은 진정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 못된다.”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사실 교회는 사유 재산의 합법적 권리를 옹호합니다. 그러나 또한 분명히 모든 사유 재산에 대한 사회적 부채가 있다는 사실도 언제나 가르칩니다. 재화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보편적 목적에 이바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선물을 소수를 위하여 사용한다면 하느님의 계획에 맞갖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인류의 일부 불의한 이들의 습관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53. 피조물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길(찬미받으소서, 96)

96.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성경의 신앙을 받아들이시면서 근본적인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아버지시라는 진리입니다(마태 11,25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시면서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아버지로서 맺으신 관계를 깨달으라고 권유하시며, 하느님 보시기에는 그들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감동적인 온유함으로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루카 1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마태 6,26).

 

54. 기술 지배 패러다임의 세계화(찬미받으소서, 109)

 

109. 기술 지배 패러다임은 또한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고자 합니다. 경제는 이윤을 목적으로 모든 기술 발전을 받아들이며 인간에게 미치는 잠재적 악영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금융은 실물 경제를 질식시켜 버립니다. 우리는 세계 금융 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고, 환경 훼손에서는 너무 더디게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일부 집단은 현대 경제와 기술이 모든 환경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또한 비전문적인 언어를 동원하여 전 세계 기아와 빈곤이 단순히 시장의 성장만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그 누구도 감히 옹호하지 않는 특정 경제 이론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경제를 기능하게 하는 실제적 운용만을 중시합니다. 그 이론들을 그들이 말로는 지지하지 않을지 몰라도, 더 균형 잡힌 수준의 생산, 더 나은 부의 분배, 환경과 미래 세대의 권리에 대한 배려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행동으로 그 이론들을 지지합니다. 그러한 행동은 그들에게는 이윤 극대화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러나 시장 자체가 온전한 인간 발전과 사회 통합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속되고 있는 비인간적인 박탈 현상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대비되는 낭비적이고 소비 중심적인 일종의 ‘초발전’”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가난한 이들이 정기적으로 생필품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경제 제도와 사회 계획의 개발은 너무 더딥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실패하고 있는 것의 가장 깊은 뿌리를 보지 못합니다. 이는 기술과 경제 성장의 방향, 목적, 의미, 사회적 맥락과 관련됩니다.

 

55. 현대 인간 중심주의의 위기와 영향(찬미받으소서, 116-117)

 

116. 근대에는 지나친 인간 중심주의가 있어 왔고,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또 다른 모습으로 위장하여 공동의 이해와 사회적 결속 강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과 인간 중심주의가 불러온 한계에 새롭게 주의를 기울일 때가 되었습니다. 이는 개인과 사회가 더욱 건전하고 풍요롭게 발전하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 그리스도교 인간학이 적절하게 제시되지 못한 것이 인간과 세상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낳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세상을 지배하려는 꿈이 퍼져 나가면서, 자연 보호는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배’는 책임 있는 관리라는 의미로 올바르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117.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과 인간의 결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데에 태만한 것은 자연의 구조 안에 새겨진 메시지에 대한 무관심을 뚜렷하게 보여 줄 뿐입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가난한 이, 인간 배아, 장애인이 지닌 가치를 인식하지 못할 때 자연의 울부짖음 자체에도 귀를 기울이기가 어려워집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현실에서 독립된 존재임을 선언하고 절대적 지배자를 자처하면, 인간 삶의 기초 자체가 붕괴됩니다. “인간은 세계에서 하느님의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 부당하게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으며, 이렇게 인간은 자연의 반항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56. 환경문제는 통합 생태론적 접근이 필요합니다(찬미받으소서, 138-139)

 

138. 생태론은 살아 있는 유기체들과 그 유기체가 성장하는 환경의 관계를 연구합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사회의 삶과 존속의 조건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따르게 됩니다. 또한 발전, 생산, 소비의 모델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솔직함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원자나 아원자 입자조차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물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구성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듯이, 생물종들도 우리가 결코 그 전체를 알고 이해할 수 없을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유전 정보를 여러 생명체들과 공유합니다. 따라서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지식은 현실에 대한 폭넓은 전망에 연결되지 않으면 일종의 무지가 될 수 있습니다.

139. 우리가 ‘환경’이라고 말할 때 이는 자연과 그 안에 존재하는 사회가 이루는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우리 자신과 분리된 것이나 단순한 우리 삶의 틀로만 여기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속하므로 자연과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합니다. 어떤 지역이 오염된 이유를 알아내려면 사회의 기능, 경제, 행태, 유형, 현실 이해 방식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변화의 규모를 생각해 볼 때, 개별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별도의 답을 찾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자연계 자체의 상호 작용과 더불어 자연계와 사회 체계의 상호 작용을 고려하며 포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환경 위기와 사회 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입니다. 그 해결책을 위한 전략에는 빈곤 퇴치와 소외된 이들의 존엄 회복과 동시에 자연 보호를 위한 통합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57. 통합생태론과 공동선의 원리(찬미받으소서, 156-158)

 

156. 통합 생태론은 사회 윤리에서 핵심적이고 통일적인 원리인 공동선의 개념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공동선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의 조건의 총화”입니다.

157. 공동선은, 자신의 통합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은 인간의 존중을 전제로 합니다. 이는 보조성의 원리를 적용하면서, 사회 보장과 복지 제도, 그리고 여러 중간 집단의 발전도 필요로 합니다. 그 가운데 두드러진 집단은 사회의 기초 세포인 가정입니다. 끝으로, 공동선은 사회 평화, 곧 확고한 질서의 안정과 보장을 요구합니다. 이는 특히 분배 정의를 존중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분배 정의가 침해당하면 언제나 폭력이 발생합니다. 사회 전체, 특히 국가는 공동선을 수호하고 증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158. 불의가 판치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배척당하며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세계화된 사회라는 현재 상황에서는 논리적이고 필연적으로 공동선의 원리가 곧바로 연대로의 부름이자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됩니다. 이러한 선택은 지상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복음의 기쁨」에서 다룬 것처럼, 이는 먼저 믿는 이로서 우리가 가장 심오한 신앙의 확신에 비추어 가난한 이들의 커다란 존엄에 대하여 성찰할 것을 요구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선택이 공동선의 효과적인 실현에 근본이 되는 윤리적 요청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우리 주변을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58. 세대 간 정의(찬미받으소서, 159)

 

159. 공동선의 개념은 또한 미래 세대도 관련됩니다. 세계 경제 위기는 우리 후손들도 예외일 수 없는 공동 운명을 무시하는 악영향을 신랄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대 간 연대 없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더 이상 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지구를 생각하면, 우리가 거저 받은 선물을 전달하는 것에 관한 새로운 논리에 접어들게 됩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선사된 것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개인적 유익을 위한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공리주의적 원칙으로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세대 간 연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받은 지구는 우리 후손들에게도 속하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 주교들은 우리가 이러한 정의의 의무를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환경은 받음의 논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환경은 각 세대가 빌려 쓰는 것으로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합 생태론은 이러한 폭넓은 전망을 담은 것입니다.

 

59. 국제적 대화와 합의의 필요성(찬미받으소서, 164, 173)

 

164. 지난 세기 중반 이후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우리의 지구가 고향이며 인류는 공동의 집에 사는 한 민족이라고 의식하는 경향이 점차 나타났습니다. 세계가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생활 양식, 생산과 소비 방식의 부정적 결과를 우리가 깨닫게 할 뿐 아니라, 해결책들을 단지 일부 국가들의 이익 보호만이 아니라 세계적 관점에서 제안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호 의존은 우리에게 공동 계획을 가진 하나의 세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기술 발전에 사용된 그 지성은 심각한 환경과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국제적 운영 방식들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별 국가만의 조치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들을 다루려면 세계적인 합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러한 합의는 지속 가능하며 다양화된 농업 계획의 수립, 재생 가능하고 오염이 더 적은 형태의 에너지 개발, 높은 에너지 효율성의 촉진, 삼림과 해양 자원 관리 개선, 식수의 보편적 접근 보장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173. 실행 가능한 국제 협약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지역 국가 당국들이 효과적으로 개입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국제 관계에서 각국의 주권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결국 모든 이에게 해를 끼치게 될 지역적 재해 방지를 위한 상호 합의된 대책 마련도 필요합니다. 일부 기업이나 강대국이 다른 나라에 오염 폐기물을 내다 버리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산업을 이전하는 것과 같은 용인할 수 없는 행위를 막고 의무를 부과하는 국제적 규범들이 필요합니다.

 

60. 정치의 중요성(찬미받으소서, 178, 181)

 

178. 즉각적인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적 계획은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단기적 성장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선거권자들의 이해에 부응하여 소비 수준에 영향을 미치거나 해외 투자를 위협하는 조치로 국민들을 쉽사리 자극하려 들지 않습니다. 근시안적인 정권 수립으로 환경에 관한 장기적 안건들이 정부의 공공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곧 권력의 자리를 장악하는 것보다 과정들을 이루어 내는 데에 더 주의를 기울일 때에 언제나 더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된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정치적 위대함은 어려운 시기에 중요한 기본 원칙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며 장기적 공동선을 배려하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국가적인 계획에서 정권이 이러한 의무를 다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181. 연속성도 필수적입니다.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와 관련된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얻어 내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직접적인 비용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임기 내에 뚜렷한 효과를 이끌어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국민과 시민 단체의 압력이 없다면 당국은 언제나 개입을 꺼릴 것입니다. 특히 문제를 긴급히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정치가가 이러한 책임과 함께 그에 따르는 비용을 감내하는 일은 오늘날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는 효율과 단기적 성과의 논리와 충돌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 용기를 낸다면 정치가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인간 존엄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 안에서 여정을 마치게 되면 그들의 헌신적 책임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제도를 개혁하고 조정하며 최상의 실천을 증진하고 부당한 압력과 관료적 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정치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회에 고귀하고 탁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위대한 목표와 가치, 그리고 인본주의적이고 깊은 의미가 있는 이해가 결여된다면 훌륭한 조치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만 합니다.

 

61. 인간의 충만함을 위한 정치와 경제의 대화 (찬미받으소서, 189, 198)

 

189.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어도 안 되며 경제가 효율 중심의 기술 지배 패러다임에 종속되어서도 안 됩니다. 공동선을 고려할 때 오늘날 정치와 경제는 반드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삶, 특히 인간의 삶에 봉사해야만 합니다. 제도 전체의 검토와 개혁을 위한 확고한 결의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은행을 구제하고 그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은 금융의 절대적 지배를 재확인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지배에서는 미래가 없고, 장기간에 걸쳐 많은 비용을 치른 피상적인 회복 이후 결국 새로운 위기가 닥칠 뿐입니다.

198. 정치와 경제는 빈곤과 환경 훼손에 대해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와 경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상호 작용의 방법을 찾기를 바랍니다. 한쪽은 경제적 수익만을 추구하고 다른 한쪽은 권력의 유지나 확대에만 집착한다면 결국 남은 것은 전쟁이든지 아니면 환경 보호와 가장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쏟지 않고 정치와 경제 양자가 맺는 불순한 협약입니다. 여기서도 “일치는 갈등보다 우월하다.”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62. 과학과 종교의 대화 (찬미받으소서, 201)

 

201. 이 행성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신앙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사실이 자연 보호, 가난한 이들의 보호, 존중과 형제애의 관계망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를 서로 나누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학문들 사이의 대화도 역시 시급합니다. 각각의 학문은 자기 언어의 한계 안에 갇혀 있고는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문화는 고립과 개별 지식의 절대화를 낳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환경 문제를 적절히 다루는 것에 방해가 됩니다. 또한 서로 이념 투쟁도 하는 여러 생태 운동들 사이의 공개적이고 우호적인 대화도 필요합니다. 생태 위기의 심각성은 우리 모두 공동선을 생각하고 언제나 “실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는 원칙을 기억하며 인내와 절제와 관용을 필요로 하는 대화의 길로 나아갈 것을 요청합니다.

 

63. 환경 교육의 목표(찬미받으소서, 210)

 

210. 환경 교육의 목표가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환경 교육이 초기에는 학문적 정보, 환경 위기에 대한 인식 고취와 예방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도구적 이성에 근거한 근대성의 ‘신화’, 곧 개인주의, 무한한 진보, 경쟁, 소비주의, 규제 없는 시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다양한 차원의 생태적 균형 회복을 추구합니다. 곧 내적인 차원에서는 우리 자신과, 연대의 차원에서는 다른 이들과, 자연의 차원에서는 모든 살아 있는 것과, 영적으로는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환경 교육 신비이신 분을 향한 도약을 이루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신비이신 분께서는 생태 윤리에 가장 깊은 의미를 주십니다. 한편, 생태 윤리 교육 과정을 재정립할 역량이 있는 교육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연대와 책임을,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에 바탕을 둔 배려를 길러 나가도록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211. 그러나 ‘생태 시민 의식’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이러한 교육은 종종 정보 제공에만 머물러 습관의 형성에 이르지 못합니다. 법률과 규범이 존재하여도 효과적인 감독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릇된 행위를 규제하기에는 불충분합니다. 법규범이 의미 있는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적절한 동기 부여로 이를 받아들여 개인적인 변화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확고한 덕을 기르는 것에서 시작할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생태적 사명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더 많이 소비하고 지출할 수 있어도 난방을 하는 대신에 습관적으로 옷을 더 껴입는 사람은 환경 보호를 위한 신념과 태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작은 일상적 행동으로 피조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고결한 일입니다. 교육이 생활 양식의 참다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환경에 대한 책임 교육은 환경 보호에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주는 다양한 행동을 고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이나 종이의 사용을 삼가고, 물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적당히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생명체를 사랑으로 돌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승용차 함께 타기를 실천하고, 나무를 심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 최상의 면모를 보여 주는 관대하고 품위 있는 창의력에 속하는 것입니다. 뜻깊은 동기에서, 물건을 쉽게 내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엄을 표현하는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64. 생태적 회개(찬미받으소서, 217)

 

217. “내적인 광야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세계의 외적인 광야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생태 위기는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신심이 깊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관심을 우습게 여기고 있음도 인정하여야 합니다. 또 일부는 수동적이어서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일관성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입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의 삶에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65. 돌봄의 정신 (찬미받으소서, 220)

 

220. 이러한 회개에는 여러 가지 태도가 필요한데, 이러한 태도들이 서로 어우러져 관대하고 부드러움이 넘치는 돌봄의 정신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먼저 감사와 무상성의 태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으로 선물하셨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아무도 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거저 주는 희생의 태도와 관대한 행위를 일으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또한 이러한 회개는 우리가 다른 피조물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우주의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커다란 우주적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사랑에 넘치는 인식을 포함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을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바라보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모든 존재와 결합시켜 주신 유대를 깨닫습니다. 생태적 회개는 하느님께서 우리 저마다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을 증진시켜 창의력과 열정을 북돋아 주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로 봉헌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탁월함을 개인적 영광이나 무책임한 지배의 근거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에서 비롯된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특별한 능력으로 이해합니다.

 

66. 기쁨과 평화의 영성(찬미받으소서, 222-223, 225)

 

222. 그리스도교 영성은 삶의 질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 방식을 독려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포함하여 다양한 종교 전통들 안에 담겨 있는 오래된 가르침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곧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확신입니다. 소비의 기회가 끊임없이 생겨나 분심이 들고 모든 것과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든 실재 앞에서 차분히 머무르는 행위는 우리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인간의 실현에 이르는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합니다. 이는 바로 검소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검소함은 우리가 작은 것들의 진가를 차근차근 알아볼 수 있게 하고, 삶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들에 감사하면서 내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탄식하지도 않게 합니다. 여기에서는 지배의 논리를 피하고 단순히 쾌락을 쌓는 일을 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223.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절제는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이는 부족한 삶도 아니고 열정이 없는 삶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사실, 순간순간을 더 잘 즐기며 사는 이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계속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또한 이들은 모든 사람과 사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의 의미를 체험하고 가장 단순한 현실에 익숙해져 이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떨쳐버려 덜 피곤하고 고민도 덜게 됩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특히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형제적 만남, 봉사, 능력 개발, 음악과 미술, 자연과의 만남, 기도 안에서 만족할 때 그러합니다. 행복하려면 우리를 마비시키는 특정한 욕구들을 억제하는 법을 알고, 삶이 주는 많은 다른 가능성들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225. 더 나아가, 어느 누구도 스스로 평화롭지 않고서는 절제하면서도 만족한 삶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는 평화가 전쟁이 없는 상태보다 더 넓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는 것과 부분적으로 관련됩니다. 내적 평화는 생태계 보호와 공동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제대로 이루어진 내적 평화는, 삶의 깊이로 이끄는 경탄의 능력이 함께하는 조화로운 생활 양식에 반영됩니다. 자연은 사랑의 언어로 넘치지만, 소음이 계속되고 근심과 혼란이 이어지며 겉모습만이 숭배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은 부조화를 느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서두르면서 마치 자신이 뭔가를 이룩하고 있다고 느끼고자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합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다시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는 환경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통합 생태론에는 피조물과 평온한 조화를 되찾고, 우리의 생활 양식과 이상에 대하여 성찰하며,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것들 안에 살아 계신 창조주를 바라보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분의 현존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67. 시민적이고 정치적인 사랑 (찬미받으소서, 228, 231)

 

228. 자연을 돌보는 일은, 더불어 사는 삶과 친교의 능력을 포함하는 생활 양식의 일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며 그래서 우리가 형제자매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형제적 사랑은 무상의 것이어야만 하며 결코 누군가가 해 준 것 또는 앞으로 해 줄 것에 대한 보답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이 무상성은 우리가 바람과 태양과 구름을 통제할 수 없어도 그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보편적 형제애를 논할 수 있습니다.

231. 서로를 돌보는 작은 몸짓으로 넘치는 사랑은 또한 사회적 정치적 사랑이 되며,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사회에 대한 사랑과 공동선에 대한 투신은 개인들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차원의 거시적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애덕의 탁월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에 “사랑의 문명”이라는 이상을 제시한 것입니다. 사회적 사랑은 참다운 진보를 위한 열쇠입니다. “더욱 인간답고 더욱 인간에게 걸맞은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생활 — 정치, 경제, 문화 — 에서 사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사랑이 지속적으로 모든 활동의 최고 규범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상의 작은 몸짓들의 중요성과 더불어 사회적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 우리가 환경 훼손을 효과적으로 막고 돌봄의 문화가 온 사회에 스며들도록 장려합니다. 이 사회적 역동성 안에 다른 이들과 함께 참여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영성에 속하는 것이고 사랑의 실천이며, 이를 통하여 자신이 성숙하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68. 성찬례(찬미받으소서, 236)

 

236. 피조물들은 성찬례 안에서 가장 탁월하게 드높여집니다. 감각적인 방식으로 직접 드러나는 경향이 있는 은총은,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시어 피조물들에게 당신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 주실 때 최상의 표현에 이릅니다. 주님께서는 강생의 신비의 정점에서 작은 물질을 통하여 우리 내면 깊은 곳에 가닿고자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위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오셔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십니다. 성찬례 안에서 이미 완성이 이루어지고, 그 안에는 세상의 핵심, 사랑과 생명이 무한히 넘쳐흐르는 중심이 있습니다. 성찬례 안에 현존하시는 강생하신 아드님과 하나 되어 온 우주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성찬례는 그 자체로 우주적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우주적입니다! 성찬례는 시골 성당의 초라한 제대에서 거행될 때에도 어떤 면에서는 늘 세상의 제대에서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성찬례는 하늘과 땅을 이어 줍니다. 성찬례는 모든 피조물을 품고 그 안에 스며듭니다.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 세상이 복되고 온전한 경신례로 하느님께 되돌아갑니다. 성찬의 빵 안에서 “창조는 성화를 향하여, 거룩한 혼인 잔치를 향하여, 바로 창조주와 이루는 일치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따라서 성찬례는 또한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위한 빛의 원천이며 동기로 우리가 모든 피조물의 관리자가 되도록 이끌어 줍니다.

 

69. 삼위일체와 피조물의 상호 관계(찬미받으소서, 238-239)

 

238. 성부께서는 모든 것의 궁극적 원천이시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토대가 되시어 당신 자신을 알려 주는 자애로우신 분이십니다. 성부의 모습을 드러내시는 성자를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었으며, 성자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서 사람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이 땅과 결합시키셨습니다. 무한한 사랑의 끈이신 성령께서는 세계의 중심 깊이 현존하시면서 새로운 길에 영감과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세상은 하나의 신적 근원이신 삼위께서 창조하셨는데, 각 위격은 각자의 고유성에 따라 이 공동 사업을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세상을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관상할 때, 우리는 온전하신 삼위일체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39. 삼위일체의 친교를 이루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삼위께서 모든 실체 안에 그 표징을 남겨 두셨다고 생각합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인류가 원죄 이전에는 각 피조물이 어떻게 “하느님께서 삼위이심을 입증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단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자연이라는] 책이 인간에게 열리고 우리 눈이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을 때에는” 자연 안에 삼위일체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이 성인은 모든 피조물은 그 안에 고유한 삼위일체 구조를 담고 있으며 실제로 인간의 시야가 그토록 좁고 어둡고 취약하지 않았다면 이를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그분은 삼위일체의 열쇠로 현실을 읽도록 노력하라고 우리를 채근합니다.

 

70.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

 

241. 예수님을 돌보신 성모 마리아께서 이제 이 상처 입은 세상을 모성애로 함께 아파하며 돌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꿰찔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해하신 것처럼 핍박받는 가난한 이들과 인간의 힘으로 황폐해진 이 세상의 피조물 때문에 지금도 슬퍼하고 계십니다. 완전히 변모하신 성모님께서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사시고,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묵시 12,1) 여인이시며 하늘로 들어 올려지시어 모든 피조물의 모후가 되십니다. 영광스러운 몸이 되신 성모님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계시며, 피조물이셨던 분으로서 그 완전한 아름다움에 이르게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전 생애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셨을 뿐만 아니라(루카 2,19.51 참조), 이제는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더 지혜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성모님께 간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71.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도록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찬미받으소서, 243-245)

 

243. 마침내 우리는 하느님의 한없는 아름다움을 얼굴을 맞대듯 마주할 것이고(1코린 13,12 참조) 세상의 신비를 경탄하고 기뻐하며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우주도 우리와 함께 그 무한한 충만에 함께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영원의 안식일을 향하여,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늘나라에 있는 공동의 집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영원한 삶은 우리가 함께 나누는 하나의 경이가 될 것입니다. 그 삶 속에서 눈부시게 변모된 피조물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고, 궁극적으로 해방된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이바지를 하게 될 것입니다.

244.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세상에 있는 좋은 것은 모두 하늘나라의 잔치에도 받아들여질 것임을 인식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이 집을 돌보는 데에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을 찾아 이 땅에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시작이 있다면 또 세상이 창조된 것이라면, 우리는 시작하신 분, 창조주이신 분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래하며 걸어갑시다! 이 지구를 위한 우리의 투쟁과 염려가 결코 우리 희망의 기쁨을 앗아 가지 못합니다.

245.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아낌없이 내어 주라고 권유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힘과 빛을 주십니다.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는 생명의 주님께서는 늘 이 세상 중심에 현존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몸소 이 땅과 궁극적으로 결합하셨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게 언제나 우리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주님, 찬미받으소서!

 

72. 생태적 꿈 (사랑하는 아마존, 42)

 

42. 사람을 돌보는 일과 생태계를 돌보는 일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숲이 착취되어야 할 자원이 아니라 우리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존재 또는 다양한 존재들”로 여겨지는 곳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아마존 지역의 토착 부족들의 지혜는 “피조물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함께 피조물에 대한 보호와 존중을 불러일으키며, 피조물에 대한 남용을 금지합니다. 자연을 남용하는 것은 우리 조상과 형제자매와 피조물과 창조주를 모독하는 것이며 미래를 저당 잡히는 것입니다.” 토착 부족들은 유혹의 말과 자기 잇속만 차리는 권력 집단의 제안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 땅에 머무를 때 그 땅을 가장 잘 돌봅니다.” 자연 훼손은 매우 직접적이고 분명히 토착 부족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환경인 물과 공기와 땅이며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인 지구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중지하라고 요구합니다. 지구는 피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지구가 지금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들이 우리 어머니인 지구의 핏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73. 심미적이고 관상적인 감각을 일깨웁시다(사랑하는 아마존, 56)

 

56.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신 심미적이고 관상적인 감각을 일깨웁시다. 이따금 우리는 이 감각을 무뎌지게 만들고는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경탄하며 음미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멋대로 사용하고 착취할 대상으로 변질되어 버린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습니다.” 이 점을 기억합시다. 반면에 우리가 숲과 이루는 친교 안으로 들어간다면 우리 목소리는 바로 숲의 소리와 하나로 어우러져 기도가 될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유칼립투스 나무 그늘에 누워 우리가 드리는 빛의 기도는 영원의 잎사귀가 부르는 노래와 하나 됩니다.” 이러한 내적 회개를 통하여 우리는 아마존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아마존과 함께 주님께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74. 피조물의 완전성과 상호의존성(가톨릭교회 교리서, 339-341)

 

339. 피조물은 저마다 고유한 선과 완전성을 지니고 있다. ‘6일 동안’ 하신 일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한다. “만물은 창조의 조건 자체에서 고유의 안정성과 진리와 선, 또 고유의 법칙과 질서를 갖추고 있다.” 저마다 고유한 존재를 지니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신 다양한 피조물들은, 저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의 빛을 반영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각 피조물의 고유한 선을 존중하여, 창조주를 무시하는 일이나 인간과 인간의 환경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사물의 무질서한 이용을 피해야 한다.

340.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이 서로 의존하기를 바라신다. 해와 달, 전나무와 작은 꽃 한 송이, 독수리와 참새, 이들의 무수한 다양성과 차별성의 장관은 어떠한 피조물도 스스로는 불충분함을 의미한다. 이들은 다른 피조물에 의존하여 서로 보완하며, 서로에게 봉사하면서 살아간다.

341. 우주의 아름다움. 창조된 세계의 질서와 조화는 존재들의 다양성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다양성의 결과이다. 인간은 이러한 질서와 조화를 자연의 법칙으로서 점차 발견해 간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감탄한다. 피조물의 아름다움은 창조주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반영한다. 이 아름다움은 당연히 지능과 의지를 가진 인간의 존경과 순종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75. 피조물 존중의 계명(가톨릭교회 교리서, 2415-2417)

 

2415. 일곱째 계명은 모든 피조물을 존중하기를 요구한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무생물 등은 그 본성상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류 공동선을 위한 것들이다. 우주의 광물, 식물, 동물 자원을 이용할 때, 도덕적인 요구도 동시에 중시해야 하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무생물과 생물에 대한 지배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이 지배권은 미래 세대들을 포함하여 이웃에게 쾌적한 생활 환경을 물려주려는 배려로 제한을 받는 것이다. 이 지배권은 피조물 전체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요구한다.

2416. 동물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동물을 돌보시고 보호하신다. 동물은 단순히 생존함으로써도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동물을 호의로 보살펴야 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필립보 네리 성인과 같은 분들이 동물을 얼마나 세심하게 대했는지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

2417. 하느님께서는 당신 모습으로 창조하신 인간에게 동물을 관리하도록 맡기셨다. 그러므로 식량을 구하고 의복을 마련하기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정당하다. 일과 여가에서 인간을 돕도록 동물을 길들일 수 있다. 동물에 대한 의학적 과학적 실험은 합당한 한계를 지키고, 인간 생명의 치유와 보호에 이바지한다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일이다.

 

76. 성 프란치스코의 피조물의 찬가(찬미받으소서, 87)

 

○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특히 형제인 태양으로 찬미받으소서.

태양은 낮이 되고 주님께서는 태양을 통하여

우리에게 빛을 주시나이다.

태양은 아름답고 찬란한 광채를 내며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모습을 담고 있나이다.

●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인 달과 별들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하늘에 달과 별들을

맑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지으셨나이다.

○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형제인 바람과 공기로,

흐리거나 맑은 온갖 날씨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피조물들을 길러 주시나이다.

●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인 물로 찬미받으소서.

물은 유용하고 겸손하며 귀하고 순결하나이다.

○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형제인 불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불로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불은 아름답고 쾌활하며 활발하고 강하나이다.

 

77.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찬미받으소서, 246)

○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온 세계에 계시며

가장 작은 피조물 안에 계시나이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온유로 감싸 안으시는 하느님,

저희에게 사랑의 힘을 부어 주시어

저희가 생명과 아름다움을 돌보게 하소서.

○ 저희가 평화로 가득 차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하소서.

 

● 오,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저희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소중한 이들,

이 지구의 버림받고 잊힌 이들을 구하게 하소서.

○ 저희 삶을 치유해 주시어

저희가 이 세상을 약탈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

● 가난한 이들과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이득만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

○ 저희가 하느님의 영원한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모든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경외로 가득 차 관상하며

모든 피조물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도록

저희를 가르쳐 주소서.

◎ 하느님, 날마다 저희와 함께해 주시니 감사드리나이다.

비오니,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 아멘.

 

○ 모든 피조물의 모후이신 성모님,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 프란치스코,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78.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찬미받으소서, 246)

 

○ 하느님 아버지,

모든 피조물과 함께 찬미하나이다.

전능하신 성부께서 손수 빚으신

모든 피조물은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현존과 자애로 충만하나이다.

찬미받으소서!

●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만물이 당신을 통하여 창조되었나이다.

성자께서는 성모 마리아께 잉태되시어

이 땅에 속하셨으며

인간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셨나이다.

성자께서는 오늘도 당신 부활의 영광 안에서

모든 피조물 안에 살아 계시나이다.

찬미받으소서!

○ 성령님, 성령께서는 당신의 빛으로

이 세상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끄시며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피조물과 함께하시나이다.

성령께서는 또한 저희 마음 안에 머무르시며

저희를 선으로 이끄시나이다.

찬미받으소서!

● 삼위일체이신 주 하느님,

무한한 사랑의 놀라운 공동체를 이루시니

만물이 하느님을 이야기하는 세상의 아름다움 안에서

저희가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가르쳐 주소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를 통하여

저희의 찬미와 감사를 일깨워 주소서.

존재하는 모든 것과 친밀한 일치를 느끼도록

저희에게 은총을 내려 주소서.

○ 사랑의 하느님,

이 땅에 저희에게 맞갖은 자리를 보여 주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하느님께서 기억하지 않으시는 존재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권력과 재물을 소유한 이들을 깨우치시어

무관심의 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공동선을 사랑하며 약한 이들을 도와주고

저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돌보게 하소서.

가난한 이들과 지구가 부르짖고 있나이다.

◎ 주님,

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받으소서! 아멘.

 

[하늘땅물벗 길잡이] copy rights

FHEW(Friends of Heaven, Earth, and Water) Handbook 

 

교회 인가(서울대교구) 2017년 9월 8일

초판 1쇄 펴냄 2017년 10월 4일

개정판 1쇄 펴냄 2023년 10월 4일

개정판 2쇄 펴냄 2023년 11월 1일

 

엮은이: 가톨릭 하늘땅물벗 한국협의회

주소: 04537 서울시 중구 명동길 80 가톨릭회관 611호

전화: 02-727-2278

팩스: 02-727-2271

이메일: [email protected]

웹주소: www.fhew.org

 

Ⓒ 가톨릭 하늘땅물벗 한국협의회, 2023.

 

성경,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9.

십자고상: 최복순(안젤라) 수녀(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모든 피조물의 모후이신 성모 이콘: 장긍선(예로니모) 신부

하늘땅물벗 로고: 신명우(요셉)†

 

 

참고 문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90년 평화의 날 담화, “생태계의 위기: 공동책임―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가톨릭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교황 베네딕토 16세, 2010년 평화의 날 담화,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 시오”.

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

교황 프란치스코, 「찬미받으소서 개정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1.

교황 프란치스코, 「사랑하는 아마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환 경에 대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지침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0.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 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3.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20년 특별 사목 교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

 

www.vatican.va 교황청 홈페이지

www.cbck.or.kr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

http://eco.catholic.or.kr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홈페이지

www.fhew.org 하늘땅물벗 홈페이지

 

[1] 「찬미받으소서」, 217항.

[2] 「찬미받으소서」, 206, 208항.

[3] 「찬미받으소서」, 217항; 「창조질서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42항 참조.

[4] 「복음의 기쁨」, 261항; 「찬미받으소서」, 216항.

[5] 「찬미받으소서」, 223항.

[6] 「창조질서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38항 참조.

[7] 「창조질서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39항 참조.

[8] 「찬미받으소서」, 241항.

[9] 「찬미받으소서」, 220항 참조.

[10] ‘찬미받으소서 기도’란 「찬미받으소서」 246항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와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를 통칭한 것이다.

[11]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 11항.

[12] 「찬미받으소서」, 211항.

[13]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41항 참조.

[14] 「찬미받으소서」, 3-6항 참조.

[15] 「찬미받으소서」, 156항 참조.

[16] 「찬미받으소서」, 158항 참조.

[17] 「찬미받으소서」, 212항 참조.

[18]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143항 참조.

[19] 「찬미받으소서」, 34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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