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뉴스레터 벗뜨락

요리 가거라!

‘와! 내가 이런 책들을 이렇게나 많이 샀구나!’ 애용하는 인터넷 중고 서점 기록에 나의 구매 정보가 구입 날짜, 구매처, 제목, 수령인까지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살짝 놀라며 그 내용을 죽 훑어보고는 한 번 더 놀랐다. 나의 관심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을 확인하니 뭔가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목록은 숲, 나무, 야생화, 사진 등의 서적으로 채워져 있었다. 요 몇 해 정말 관심을 기울였던 분야다. 은퇴 후 무얼 할까 많은 날 생각하며 마음이 도달한 곳은 ‘숲’이었다. 그날부터 숲, 나무와 연관된 책을 사 모았다. 책을 통해 숲 해설사를 알게 되었고, 소정의 교육을 받은 뒤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마음이 맞는 이들과 공동의 관심사를 연구하고 답사하고 확인하며, 공부도 재미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과정이 끝나면서 갈증은 더 심해졌다. 이에 따라 동기 몇 명과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편입하였다. 생물화학, 유전학, 통계학 등, 생각지도 못한 과목들 때문에 공부는 어려웠지만,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동기들과 함께 서로 격려하며 3년의 과정(2학년 편입)을 마쳤다.

 

한편, 교회 관련 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 예전부터 있었다. ‘지금껏 공부한 숲과 연결된 교회의 일이 무엇이 있을까?’ 어렴풋이 생각하던 차에 주님께서 사람을 보내셨다. 한 신입 직원이 관심사도 비슷하고 마음이 잘 맞아 가깝게 지내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후배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의 은퇴 후 계획을 들은 그 친구는 ‘생태영성학교’를 소개해 주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등록하였다. 수강생끼리 모둠을 만들어 나눔을 하는데 그때 도우미로 들어오신 분이 계셨다. 경력을 보니 ‘숲 해설사’셨다.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를 이끌고 계신 게 아닌가!’ 순간 움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태영성학교를 마치며 작성한 설문지에 계속 활동하겠다는 표시를 하고, 지금 교구벗에서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

 

벗에 발을 담그고 접하는 생태 환경 문제는 이전에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꼭 필요한 곳으로 주님께서 부르신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 준비시키신 숲에 대한 공부를 이곳에서 잘 녹여 쓰라고 기회를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의 나의 노력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자그마한 모퉁잇돌이 되었으면 한다. +

 

글_오동춘 루도비코(서울대교구 교구벗)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