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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벗뜨락

날마다 다시

생태적 전환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그런 일에 왜 빠졌느냐고 한다면, 대학에 가고서 하필 헬렌 니어링과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를 읽어 버린 ‘있어 보이는 척’이 화근이었다.

 

피가 흥건한 미디엄레어 스테이크를 좋아한 내가 비건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을 돌릴 줄은 몰랐지만 『조화로운 삶』을 읽고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보였다. 그러고는 실패했다. 학교 앞 밥집의 찌개를 먹으면서 육수는 뭘로 내셨냐고 묻는다면 내가 생각한 생태적 삶에 우글쭈글한 솔기를 만드는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배고파 본 적이 없으니 음식에 토를 단다.’고 하시는 아버지의 냉소에 나날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가 너무 피곤했다. 채식은 하겠지만 예쁜 가죽 지갑은 들고 싶었던 허영심도 의외의 구석에서 핑곗거리를 찾았다.

 

‘넘어지고’ 나니 10개월간 노력이라고 기울인 것이 다 위선 같았다. 환경이니 생태니 했던 것이 부끄러워서 한동안 입을 다물기도 했다. 한창 열풍이었던 웰빙이니 ‘로하스’에 맞닥뜨리면 생태주의가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회의적 생각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실제로 내려놓고서 지낸 암흑기도 있다. 일상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정직하게 가늠하고 그만큼 실천하는 것, 그러나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하나 꾸준히 돌려세우는 작업이 생태적 전환이라는 사실을 하루하루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는다. 그래서 더 어렵기도 하고 그 가운데서도 어쨌거나 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장황하게 적는 까닭은 글 의뢰를 받자 올해 가장 수치스러운 소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각종 일간지에도 알려진 다회용 컵 증정 행사에 부화뇌동하여 나도 ‘득템’을 했다. 워낙 출근 시각이 일러서 몇 분 기다릴 필요도 없었거니와 지난 몇 년 쓴 플라스틱 텀블러들에 균열이 자글자글하니 이참에 바꿀까 했던 것이다. 어마어마한 대기 행렬과 길가로 버려졌다는 음료, 대형 행사를 치르면서도 직원 충원은 하지 않았다는 보도를 읽자 아차 싶었다. 애초에 소비 자체를 줄이는 더욱 단순한 길이 있지 않았던가 되묻는 마음이 꽤 많이 씁쓸했다.

 

두 달째, 컵을 잘 쓰고는 있다. 쓸 때마다 작은 경고음이 들리는 것도 같다. 느슨해지지 말자거나 한 번 더 생각하자는. 비죽거림 대신 경고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그만두는 대신 ‘으이구 이것아.’ 한 뒤에 제 길로 돌아올 수는 있으니 말이다. +

 

글_정승아 테레지아(서강대학교 서강벗 반석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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