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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벗 벗소식

하늘땅물벗 모임 길잡이(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1.31)

생명이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우주에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더불어 평화로이 살게 하셨으나

오늘날 이 땅의 뭇 생명은 생존의 위협에 처해 있습니다.

보시니 좋았던 하늘과 땅이 제 모습을 되찾아

하느님 창조의 경이를 언제까지나 찬미할 수 있도록

창조보전 활동에 저희가 앞장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 –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

* 개요: 교회가 환경 문제를 중요 주제로 삼아 본격적으로 고찰한 첫 문헌으로 가톨릭 생태신학의 기초이자 환경 운동의 뿌리가 된다.

 

  1. 약 30년 전에 발표된 담화의 내용을 보면서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여 어떤 생각이 드나요?
  2. 창세기에서는 인간과 다른 피조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3. 오늘 읽은 내용 중 특히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 있으면 나누어 봅시다.

 

– 개인별 실천: 예) 가정 쓰레기 줄이기, 창세기 1~4장 읽고 묵상하기

– 공동 실천: 예) 재활용품 분리수거 업체나 리사이클 업체 견학하기

 

 

주님,

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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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 2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1990년 1월 1일)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 –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

목차 서론(1~2)

I.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3~5)

II. 생태계의 위기, 도덕 문제(6~7)

III. 해결책의 모색(8~9항)

IV. 새로운 연대의 절박한 요구(10~14항)

V.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15~16항)

 

서론

  1. 세계평화는 군비경쟁과 지역분쟁 그리고 제 민족과 국가들 간의 지속적인 불의에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자연에 대한 마땅한 존중의 결여, 자연 자원의 피해, 점차 악화되는 생활의 질적 저하로 인하여 세계의 평화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의식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야기하는 불안과 위기의식은 집단적인 이기심과 타인에 대한 무시 그리고 부정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환경의 파괴에 직면하여, 모든 곳에 사는 사람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계속해서 지구의 자원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은 물론 정치 지도자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 광범한 학문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원인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새로운 생태학적 각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무시해 버릴 일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과 사업으로 발전되도록 마땅히 권장하여야 할 일입니다.

2. 평화로운 사회 발전의 토대인 수많은 윤리가치들은 생태환경 문제에 구체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도전들이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은 도덕적 응집력을 갖춘 세계관에 바탕을 둔 해결책의 신중한 협력모색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세계관은 계시로부터 나온 종교적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저는 성서의 창조설화에 대한 반성으로써 이 메시지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저는 우리와 똑같은 신념을 갖고 있지 않은 분들도 이 이야기 속에서 반성과 행동을 위한 공동의 기반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I.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3. 우리가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최초의 자기 계시를 발견하고 있는 창세기(1-3장)에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는 구절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습니다. 바로 그 때에 이 반복구는 바뀌어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고 합니다. 모든 피조물을 인간에게 맡기신 다음에야 –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의 표현에 따르자면 –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창세 2,3) 쉬실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계획 전개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은 아담과 하와의 소명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모든 피조물로부터 인간 존재를 구별지어주는 은혜와 역량을 활용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동시에 그들의 소명은 인류와 다른 피조물 사이에 확고한 관계를 설정하여 주었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온 땅을 지혜와 사랑으로써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창세 1,28)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인간은 창조주의 계획을 자의로 거슬러, 즉 죄악을 선택함으로써 기존의 조화를 파괴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죽음과 형제 살해로 귀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땅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창세 3,17-19; 4,12 참조) 모든 피조물은 제구실을 못하게 되고, 오직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20-21)

4.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인류와 하느님의 화해를 성취하였다고 믿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기꺼이,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콜로 1,19-20). 이렇게 하여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묵시 2,15 참조) 죄악과 멸망의 사슬에 예속되어 있던 피조물(로마 8,21 참조)이 이제 새로운 생명을 얻었으며,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여 있습니다”(2베드 3,13).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함을 넘치도록 주셔서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에페 1,8-10).

5. 이러한 성서적 고찰은 인간 활동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주의 계획에 등을 돌릴 때에, 인간은 다른 피조물의 질서에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질서를 야기하게 됩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지구 그 자체도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땅은 메마르고 거기에 사는 모든 것이 찌들어 간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함께 야위고 바다의 고기는 씨가 말라간다”(호세 4,3).

이 지구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도 절박하게 의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점증하는 자연계의 황폐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연 그 자체를 지배하는 질서와 조화의 요구, 감추어져 있지만 감지할 수 있는 그 요구를 무감각하게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의 행동거지에서 자연의 황폐가 야기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이루어진 자연 훼손에 대한 치유가 아직도 가능한가 하고 걱정스럽게 묻고 있습니다. 분명코, 그 적절한 해결책은 단순히 지구 자원의 더 나은 관리나 더욱 합리적인 이용만으로 모색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일들도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의 근원으로 들어가, 환경의 파괴도 심각한 도덕적 위기의 한 난국일 뿐이라는 진상의 전모를 직시하여야 합니다.

 

     II. 생태계의 위기, 도덕 문제

6. 오늘날 생태계 위기의 일부 요인들은 그 도덕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째 요인이 과학 기술 발전의 무차별 적용입니다. 최근의 많은 발전들은 인류에게 명백한 혜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참으로 그러한 발견들은 하느님의 세계 창조활동에 책임 있게 참여하여야 할 인간 소명의 숭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산업 및 농업 분야에 있어서 이러한 발견들의 적용이 오랜 기간 폐해를 미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켜 왔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생태계의 한 영역에 개입할 때에 그러한 개입이 다른 영역에 미치는 결과와 미래 세대의 행복에 대하여 모두 마땅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존층의 점진적인 파괴 그리고 이와 관련된 ‘온실 효과’는 이제 위기의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산업의 발전, 거대한 도시 집중화, 막대한 에너지 수요의 증대로 인한 귀결입니다. 산업 폐기물, 화석 연료의 활용, 제초제, 냉각제 추진 연료의 사용 등 이 모든 것은 대기 환경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따른 기상 및 대기의 변화는 건강의 손상에서부터 장차 낮은 대지의 해저침몰 가능성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 이미 이루어진 훼손은 제대로 복구할 수 없다고는 하더라도, 다른 많은 경우에는 당장 그 훼손을 중지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 인류 공동체, 즉 개인과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진지하게 자신의 책임을 떠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7. 생태학적 문제의 근저에 깔려 있는 도덕적 암시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심각한 징후는 생명존중의 결여입니다. 이는 수많은 형태의 환경오염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흔히들 생산에 대한 관심이 노동자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고 경제적인 관심이 개인과 전 국민의 선익에 우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환경의 오염이나 파괴는 때때로 순전히 인간 경시에 이르고 마는 비자연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세계관의 귀결입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 생태계의 민감한 균형은 무절제한 동식물의 남획과 무분별한 자연 자원의 개발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비록 발전과 복지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인류에게 손실을 미친다는 사실이 직시되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로지 깊은 관심을 갖고 생물학적 연구의 엄청난 가능성들을 주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이나 비도덕적인 새로운 형태의 동식물 생명의 개발로 인하여 야기될 수도 있는 생물학적 혼란을 평가할 만한 입장에 있지 않으며, 인간 생명 그 자체의 기원에 관한 용납될 수 없는 실험에 대해서도 아직 무엇을 얘기할 만한 처지에 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처럼 미묘한 영역에 있어서 근본적인 윤리규범에 대한 무관심이나 그 규범의 거부는 인류를 바로 자멸의 지경에 이르게 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생명의 존중, 그 무엇보다도 인간 존엄성의 존중은 건실한 경제, 산업 및 과학발전을 위한 궁극적인 지도 규범입니다.

  생태학적 문제의 복합성은 그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정당한 자율성과 특수 역량을 존중하면서도 적절하고도 지속적인 해결책 모색을 위한 연구를 지도할 수 있는 근본원리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들은 평화로운 사회 건설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입니다. 평화로운 사회는 결코 생명에 대한 존중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생명 존중이 바로 모든 피조물의 보전이라는 사실을 경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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