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2030 세대공감] 하늘과 땅 그리고 물의 벗들
종장: 2030 세대 공감
어느새 ‘2030 세대 공감’의 마지막 기고다. 뒤늦게 고백하건대 작년 이맘때에 경향잡지에 교회에 대한 20대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는 의뢰를 처음 받았을 때 곧바로 거절했다. 나 자신이 20대 청년 신자를 대표하지 못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남자, 교리교사, 성서 모임 봉사자, 산티아고 순례자, 교회 사료 및 문헌 번역가, 대학원생, 그리고 너무나 낯설게 들릴 ‘생태 환경 사도직 단체 하늘땅물벗의 청년 모임 대표’.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이력이다.
숙고 끝에 용기를 내 보기로 결정한 이유는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서 가졌던 아쉬움과 답답함 그리고 ‘현실’이라는 높은 벽 앞에서 계속 타협하며 마주하는 우울감이 세대를 넘나드는 우리 모두의 어려움이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첫 회의에서 담당자는 내가 참가했던 폴란드 세계 청년 대회나 태국 아시아 청년 아카데미 실천 신학 포럼과 같은 눈에 띄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기고해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낯선 이야기보다는 내 또래 20대 청년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 대한 묵상을 중심으로 나누고 싶었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올해 일관되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신앙은 삶’ 그 자체라는 것이다. 2월 첫 기고를 통해 바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청년과의 만남을 외면하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4월에는 불편함으로 인한 세대 간 단절로 논의를 확장했다. 이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강조하시는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라는 의미의 ‘시노디아(synodia)’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29항).
6월에는 도보 순례의 경험을 통해 타협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해 전심전력으로 다가감의 중요성을, 8월에는 비교적 많은 또래 청년이 거쳐 간 청년 성서 모임에서 우리의 달란트와 일상을 성소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 나누었다. 지난 10월에는 하느님께 잘 보이고자 자신이 가장 아끼는 옷인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성당에 간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코로나 시대에 형식 너머에 있는 신앙생활의 본질을 묵상해 보고자 하였다.
4월에 소개한, 사제가 된 대학 선배의 말처럼 하느님께 향하는 길은 그저 “끊임없이 결심을 쇄신하는 것”이다. 쇄신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곧 “젊음을 단념한 것”(18항)이며, “그 무엇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어야”(39항) 하는 신앙인의 의무를 포기한 것이다.
하늘땅물벗과 생태영성
이 글에서는 나를’하늘땅물벗의 청년 활동가 모임 벨루가벗의 반석벗(대표)’으로 소개한다. 기고자로 섭외된 계기였지만, 정작 그동안 생태 환경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늘땅물벗 활동을 하는 이유에 생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방식 추구가 더 큰 동기이기 때문이다. 생태 환경 관련 시민 단체가 아닌 종교 단체에서 활동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여러 생각을 먼저 나눈 뒤에 마지막에 할 이야기로 아껴 두었다.
나는 청년 활동가라는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활동가라고 하면 왠지 그 사람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보다는 거리에서 시위하는 투쟁적인 모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물론 생태 환경 사도직에는 하늘땅물벗에서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기후변화 시위와 같은 운동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하늘, 땅, 물을 벗으로 여기고 살아가면서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완성에 이르기를 추구하는 정신이 있다. 기후변화 시위보다 중요한 것은 회원들 각자의 삶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벨루가벗을 함께하는 다른 청년들도 스스로를 활동가나 운동가로 인식하기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의 힘으로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평범한 시민 신자로 여긴다.
대전환과 생태적 회개
“그린 뉴딜은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대전환이 아닙니다.” 지난 9월 9일 ‘그린 뉴딜 정책과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37회 가톨릭 에코 포럼의 토론에서 했던 말이다.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주문하는 “생태적 회개”(217항)의 핵심은 “마음을 바꾸는 경험”(218항)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판 뉴딜 기조연설을 살펴보면 정치권에서 말하는 대전환은 생태적 회개라는 차원이 아닌 그저 경기 부양책에 대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듯하여 크게 아쉬웠다.
요즘 생태 환경 이야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논의는 크게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으로 나뉜다. 온실가스 감축은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으로 크게 에너지 효율 제고, 친환경 에너지원으로의 전환 그리고 절약이 있다. 기후변화 적응은 현재 나타나고 있거나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일컫는다.
온실가스 감축 방법 중에서도 절약만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시는 생태적 회개와 맞닿아 있다. 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효율적 에너지 소비나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에는 지금까지 누리던 풍요를 지속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자리 잡고 있음을 짚고 넘어가려는 것이다. 적응 정책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커진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사회 교리의 원칙을 이루는 약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풍요 없는 부(富). 인류학자 마샬 살린스는 그의 저서 「석기시대 경제학」에서 인간의 욕구는 더 많은 생산을 통해 충족될 수도 있지만 덜 원함으로써 쉽게 충족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대림 시기를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을,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복음을 통해 깨어 있음으로써 회개해야 하며, 기뻐하고 순명해야 함을 해마다 다시 기억해 낸다. 올해에는 특별히 평소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주님의 다른 피조물인 하늘과 땅 그리고 물을 향해 깨어 있는 시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 하늘, 땅, 물의 벗들이 되는 날이 오기를 아기 예수님께 청한다.
벨루가벗 최정원 레오 작성
경향잡지 2020년 12월호 ‘2030 세대공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코너에 기고된 글입니다.
출처: http://ebook.cbck.or.kr/gallery/view.asp?seq=214846#p=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