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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하느님의 눈짓] 23. 다양함의 미학

우주선이 달의 궤도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아폴로 16호의 우주비행사는 “바다는 맑고 푸른색이고, 땅은 갈색이며, 구름과 눈은 순백색입니다. 우주의 암흑에 보석처럼 매달려 있는 지구를 봅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안에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 아침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등교하는 학생도 있으며, 쇼핑몰도 있고,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우주비행사는 고향 지구를 바라보는 것이 숨을 쉴 수 없도록 아름다웠으며, 그곳에 털실로 내 목도리를 짜며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달을 발견하러 갔던 인류가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정작 달이 아니라 지구와 그 안의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2017년 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비행사들과 통신으로 만나신 적이 있습니다. 신의 창조물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는 우주인의 말에, 교종께서는 그들이 하느님의 눈으로 지구를 보고 있다고 격려하시며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를 통해 창조의 아름다움과 그 근거를 생각하게 된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온갖 희로애락으로 가득 찬 삶의 장소인 지구가, ‘푸른 구슬’(blue marble)이나 ‘담청색 점’(pale blue dot)으로 어떤 행성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수없이 많은 생명이 다양하게 살아 움직이는 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손주가 수족관에 다녀온 동영상을 보내왔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아기상어만 보다가 커다란 수조에서 헤엄치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합니다. 피라미만 한 어린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그것들이 떼 지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 냇가가 떠올랐습니다. 자연과 함께 자랐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수족관이나 공원에서나 다른 모습의 생명을 만나게 되는 아이들이, 수많은 생명이 공존하는 자연스러운 세상을 느끼기 어려울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흔하게 곁에 있던 송사리, 청개구리, 메뚜기를 보기 힘들게 된 것은 분리된 도시 생활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구에서 멸종의 위기에 놓인 종이 1만 5000여 종이나 된다는 소식은 지나치게 독주하는 인류가 동식물과 미생물의 서식 환경을 크게 망쳐놓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호랑이 같은 맹수류뿐 아니라 크낙새, 늑대, 여우, 사향노루, 꽃사슴, 반달가슴곰 등 이름 익숙한 동물들도 이미 우리 땅의 자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창조로 번성하였던 신생대가 이제 그 마지막에 도달하였다는 토마스 베리의 통찰이 떠오릅니다.

수많은 생명과 그것을 살리는 환경이 만들어내어 우주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지구의 아름다움은, 다양함의 조화가 갖는 미학의 최고봉을 보여줍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창조를 거듭하시며 다양함이 커질 때마다 매번 “보시니 좋았다!”고 감탄하셨음을 전합니다. 세상은 다양성이 줄어드는 만큼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어갈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생명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에서도 같은 원리로 다가옵니다.

간혹 공동체 모임에서 다양한 의견 개진이 어려운 분위기가 생기곤 합니다. 그렇지만, 다를 수 있는 타인의 의견을 다양함의 관점에서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생태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특히 생태 및 환경과 관련된 의견들은 서로 연결된 세상의 특성 때문에 다양하게 표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는 다르더라도 하느님의 무한하신 다양함을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그분의 눈짓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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