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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하느님의 눈짓] 21. 거짓 자연

동이 트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새벽, 아파트 승강기에서 골프 가방을 챙겨 든 윗집 부부를 만났습니다. 일찍부터 운동 나간다는 내 인사에, 새벽이 아니면 시간 예약이 어려워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산속에서 자연을 즐겨야지 갑갑해 못 살겠다는 하소연도 이어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생업에 고통을 받는 분들이 있는 반면 골프장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며 성업 중이라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골프장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고 퍼블릭 골프장일수록 성업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과의 만남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 돌파구를 찾는 간절한 심정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골프장에서 “자연을 즐긴다”는 이웃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어쩌다 비행기를 탔을 때 경기도 상공에서 공항으로 접근하면서 보이는 땅의 모습은 아파트가 집단을 이룬 도시와 그 도시를 잇는 도로들과 마치 백반증 환자의 피부처럼 녹색 산에 무늬를 이룬 골프장으로 가득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골프장이 500곳이 넘는다고 합니다. 축구장 150개를 만들 수 있는 면적을 차지하는 18홀 코스가 150개 이상 경기도에 있다는 통계를 보면,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산의 모습이 왜 그런지 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골프장이 대부분 산림 안에 위치하는 까닭에 골프가 마치 산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스포츠로 인식되나 봅니다.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을 헐어내고 지형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무뿐 아니라 두더지나 지렁이 같은 땅속 생물까지 없애기 위해서 자연토를 수십㎝ 깊이로 걷어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로지 잔디만 자라게 하려고 맹독성 살충제, 제초제와 비료가 다량 투입되는 골프장이 산속의 수많은 생태계가 공유하는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상식으로도 짐작이 갑니다. 온난화 위기를 걱정하며 온실가스를 한 톨이라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재활용과 태양열 발전을 외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거의 유일한 대안인 나무를 몰아낸 골프장에서 자연과 소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합니다. 자연적 물길을 댐이 막는다는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숲이 보유한 물이 지하수로 흘러 내를 이루는 물길을 방해한 엄청난 면적의 골프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골프 문화 또한 함께 사는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구조를 갖습니다. 수십만 원의 라운딩 비용과 수백만 원이 드는 장비와 복장, 그리고 강습을 받아야 하는 비용까지 포함한다면, 매우 한정된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골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우월의식을 즐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화마저 결코 생태적일 수 없는, 하느님의 눈짓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위장된 자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새와 꽃 앞에서 설교하시고 모든 자연을 형제와 누이로 부르신 프란치스코 성인으로부터 자연과 조화롭게 진정한 위로를 얻는 법을 배웁니다. 그분의 청빈과 겸손은 단순한 금욕주의가 아니라 주변과 자연에 이기적인 지배자가 되지 않기 위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11)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들이다.”(마태 7,15) 풀이 있고, 호수가 있고, 멋진 나무들이 있다고 다 자연은 아닙니다. 하느님이 손수 만드시고 참 좋았다고 하신 생명들을 걷어낸 자리에 사람이 설계한 오직 그것들만 있게 한 것을 어떻게 자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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