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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하느님의 눈짓] 19. 화장실 없는 아파트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횟집을 찾았습니다. 큼직한 자연산 광어와 도다리를 싼 가격에 주겠다는 주인의 권유를 마다하고, 함께 간 지인은 굳이 양식한 광어를 선택했습니다. 제 상식을 뒤집고 자연산을 마다한 지인의 이유는 방사선으로 오염된 바다가 안전하지 않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 때문에 걱정은 한층 더해졌습니다.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가 다량으로 필요하므로 원전은 바닷가에 짓는다고 합니다. 정화 장치를 사용해서 오염수의 핵물질 일부를 제거한다지만, 주변에 유입되는 빗물과 지하수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기도 하므로 바다 생선에 불안한 마음을 까다롭다고 탓할 일만은 아닙니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로 불리는 원전은 폐기물을 마냥 쌓아놓을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지으신 자연물은 어떤 폐기물을 남기는지 생각해 봅니다. 나무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내어놓는 광합성을 합니다. 이는 지구에 닥친 온난화 위기를 구해줄 보루로써 우리가 나무를 가꾸는데 특별히 힘써야 할 이유가 됩니다. 나무에서 나오는 상큼한 피톤치드 향은 숲을 걸을 때 기분을 좋게 해주면서 심폐기능까지 도와줍니다. 천연공장 같은 나무의 생육은 주변에 온갖 곤충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잎과 열매를 먹이로 제공하다가 때가 되면 낙엽을 떨구며, 버려지는 폐기물 하나 없이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으로 순환합니다. 곤충과 큰 짐승 또한 “그분께서는 온갖 생물로 땅의 얼굴을 덮으셨으니 그 모든 것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집회 16,30)라는 말씀처럼 배설물조차 순환을 위한 양분이 되어 땅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물질이 일정한 수명을 갖고 생태계 순환 고리를 따라 형태를 바꾸어 가며 존재하는 하느님의 창조원리를 묵상해 봅니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다양한 미세생물을 포함한 땅과 바다는 생태계가 지속하도록 분해하고 싹 틔우고 기르면서 생명을 마치고 돌아간 주검들마저 버려지는 폐기물이 아닌 새로운 생명의 일부로 돌아가도록 자리를 제공합니다. 그러고 보니 흙과 바다를 오염시켜 재생산의 순환 구조를 어렵게 만드는 물질은 모두 인간이 가공한 것입니다.

미립자로 이루어진 물질 내부가 에너지를 내뿜으며 붕괴하는 현상을 활용하는 핵기술은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7)라고 하신 경고를 생각나게 할 만큼 위태롭습니다. 사용을 마친 핵연료가 그 후에도 최소 10만 년에 걸쳐 생명을 위협하는 방사선을 지속하여 내보낸다는 사실은 핵폐기물이야말로 인간이 쓰고 버린 가장 독성 강한 되돌릴 수 없는 폐기물임을 보여줍니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는 다만 원전의 경우만은 아닙니다. 인간이 석유로부터 만들어낸 플라스틱 또한 순환을 어렵게 하는 물질입니다. 급속히 증가한 배달 문화는 포장과 운반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플라스틱의 사용량을 증가시켰습니다. 100~500년이 걸려야 자연 상태로 분해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줄일 뿐 아니라 이미 발생한 쓰레기의 재활용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창조주를 의식하는 기업인이라면 상품을 설계하고 제조할 때 그것이 최대한 자연의 순환구조 안에 속하도록 미리 검토하는 생태적 가치를 잊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사용할 때 버리는 것을 함께 생각하는 지혜를 갖는다면 경제가치 이전에 자연의 순환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하느님 이치에 합당한 삶으로 다가설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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