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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주님 내 안에] 물의 거룩함

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목을 타고 내려온 한 모금의 물이 배를 편안하게 할 즈음, 이제 정신이 맑아져 오는 것을 느낍니다.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된 듯합니다. 물이 없으면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천지에 널린 것이 물이어서 낮에는 개울에서 놀고, 저녁에는 그 물에서 목욕하고, 우물 하나로 한 동네가 식수를 해결하던 시절은 추억으로만 남았습니다. 물을 물 쓰듯 하던 시절은 이제 끝난 것이겠지요. 생각해 보니, 물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세상 어디에나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물이 생명력을 잃는다면 더 이상 은총이 되지 못하겠죠. 누군가 물을 오염시킨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방해하는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설혹 자연 재난이 오염을 가져오더라도 그것은 회복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생활 폐수, 산업 폐수, 농축산 폐수, 방사능 오염, 유조선 좌초, 쓰레기 섬 등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 자연의 자정 능력을 넘어 ‘공동의 집’에 누를 끼치고 있습니다. 오염을 피해 우리는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수를 마시지만, 그 용기를 생산하며 배출해 낸 온실가스는 다시 세상을 오염시킬 것입니다.

물은 액체로만 존재하지 않고, 기체로, 또 고체로도 존재한다는 것이 신비롭습니다. 본질은 같지만 여러 상태의 모습을 갖는 물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봅니다. 그리고 저 마다 나름의 가치를 갖는 다름을 이해하는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얼음이 물보다 가볍다는 것 또한 경이롭습니다. 얼음과 물의 비중에 같다면, 아마 추운 겨울 물고기들은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벼운 얼음이 물 위를 덮어주어 생명을 보호하도록 창조된 세상을 보며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느낍니다. 순환하는 물은 창조를 돕습니다.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 하늘로 올라간 물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며 자연의 모습을 바꾸고, 더러운 것을 실어 나르고, 영양을 품고 피조물을 키웁니다. 물의 순환을 통해 우리는 창조하시는 하느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은 세례성사의 본질을 이룹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도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셨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에 함께 했던 바로 그 물은 자연의 순환 과정을 통해서 지금도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이란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고 더러운 것을 실어 나르는 인간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해 온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물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은총이고, 생명이며, 주님을 만나게 해주는 성스러운 피조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의 거룩함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누이인 물’을 대하는 태도도 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태희(하늘땅물벗)

수원주보 제19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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