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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7. 하느님의 맥박

아직 한겨울인 듯한데 절기는 입춘을 지나 이제는 봄입니다. 한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막 움터 오르는 생명을 느끼게 됩니다. 남쪽 해안가의 동백나무는 한겨울에도 이미 빨간 꽃을 피워왔지만, 아직 잔설이 덮여있는 시골의 밭두렁에서 납작 엎드린 채 푸른빛을 내보이는 민들레를 발견하면 시나브로 한 해의 일이 시작됨을 느낍니다. 겨울 동안 분주하던 철새도 외모를 바꾸어 혼인색을 짙게 드러내며 번식지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등 생명의 기운이 어김없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조상들의 지혜는 한 해를 24개 절기로 나누어 생활에 적용해 왔습니다. 봄을 맞는 입춘을 시작으로 보름 간격으로 우수와 경칩이 이어지며 땅의 일이 시작됩니다. 계절의 변화는 지구의 자전축이 황도에 대하여 23.5도 기울어져 있어 발생합니다. 남극과 북극이 번갈아 얼고, 해류가 발생하여 문명을 이동시키며,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어 사막과 습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리듬을 가져오는 것이 절묘한 각도로 지구가 기울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기울기가 약간만 달라도 이 지구의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는 환경이 된다는 과학자들의 말은 생명의 비밀을 담고 있는 비틀림이 우연한 숫자가 아니라 창조주의 신비스러운 의지를 간직한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하루를 통해서도 우리는 밤과 낮의 리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하루, 한 달, 일 년 또는 일생을 주기로 하는 생체의 리듬은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현상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관한 심리적 리듬까지 고려한다면, 우주를 감싸 안아 뛰고 있는 이것이야말로 창조물을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맥박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음악은 소리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어느 작곡가의 말처럼, 음악의 리듬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 역시 그것이 하느님의 맥동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태사상가인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1914-2009) 신부는 인류가 지난 오천 년 동안의 업적으로 생각하는 ‘문명’을 우주적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인간이 문명을 통하여 자존감은 한껏 드러냈지만, 우주의 리듬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생명을 펼쳐가던 다른 자연 시스템에 혼란을 주었다고 보았습니다. 인류의 문명은 밤을 낮처럼 밝히고 생산과 휴식의 리듬을 무색하게 하였습니다. 더 많이 생산하려는 욕심은 자원들을 마구잡이로 채굴하였을 뿐 아니라 화학 물질과 유전자 변형의 기술을 사용해 생명 시스템에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생명의 질서와 리듬의 혼란은 그에 따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멸종하는 종들이 발생하고, 열대우림이 소멸하고, 기후의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주변에서 실제로 느끼고 있습니다. 토마스 베리는 이제 그 리듬을 회복하여 모든 생명이 공존하는 ‘생태대’의 문명을 제안합니다.

 

올해는 입춘이 지나고 우수로 가는 길목에서 설날을 맞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며 행복을 다짐하고 희망의 덕담을 서로 나누는 때입니다. 설날은 조상을 기억하고 부모께 세배하고 어른을 찾아보며 자신의 뿌리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나’란 홀로 주어져 존재하는 독립된 생명체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조상의 유전자에 의지하여 주변의 생명체들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 살아온 존재이며, 자연의 리듬 안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생각합니다. 오늘도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자 묵상에 듭니다. 다정히 내미시는 손길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맥동 안에서 모든 것과 연결되어 살아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출처: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7. 하느님의 맥박 | 가톨릭평화신문 (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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