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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4. 단절과 회복

겨울이면 가장 추운 곳으로 기상예보에 등장하는 철원은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한탄강의 주상절리 계곡과 넓게 펼쳐진 철원평야, 그리고 예술적 멋짐을 보여주는 삼부연 폭포 등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의 기억과 함께 제 추억이 향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역사적 불행은 멋진 자연을 품은 그곳을 오랫동안 단절과 대립의 상징이 되게 하였습니다.

 

영하 20℃를 넘나들던 한겨울 어스름한 새벽, 철새를 보기 위해 찾은 철원의 토교저수지는 자욱이 피어오른 물안개로 수면은 보이지 않은 채 요란한 새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이제 막 동이 터 오르기 시작할 무렵 한 무리의 기러기 떼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아올랐고, 잠깐의 시간을 두고 연거푸 여러 무리의 새떼들이 어딘가를 향해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한한 자유로움과 질서의 아름다움이 한순간에 하늘에 펼쳐졌습니다. 땅 위에는 비록 서로의 교류가 차단된 금이 그어져 있었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새들에게 그런 단절의 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고 간다는 생각을 하니 장벽을 치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이념의 대결과 전쟁은 오롯이 인간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파괴되는 자연과 생태계는 고려할 대상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시야를 방해하는 모든 식물은 정기적으로 베어졌고, 곳곳에 묻힌 지뢰에 들짐승이 다치고, 큰물이 날 때는 지금도 폭발물이 민가까지 떠내려오곤 합니다.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다.’(「찬미받으소서」 2항)는 교종의 말씀은 이런 상황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인간이 대립하고 증오하였던 정신의 분열적 태도가 자신뿐 아니라 자연마저 파괴하는 현장에서 생태 문제는 근본적으로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런데 대립과 파괴의 현장인 DMZ가 전쟁 후 70여 년이 지난 요즈음 생태 자원의 보물 창고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총탄의 흔적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단절의 땅에 버려졌던 습지는 수많은 희귀식물과 다양한 생명체를 품은 천연 식물원으로 살아났고, 그 주변은 야생 동물과 철새의 낙원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활동이 그친 자리에서 창조주 하느님은 놀라운 생명력의 손길로 인간이 망가뜨린 것을 회복시키고 계셨습니다.

 

철원평야의 넓은 논을 가로지르다 보면 붉은색 머리에 검은 목도리를 두른 듯한 모습의 두루미들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옵니다. 두루미 가족이 둘 셋씩 무리 지어 떨어진 낱알을 먹기도 하고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기도 하는 멋진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철새를 맞이하기 위하여 곡식을 뿌려두고 보살핀 주민들의 마음은 창조물을 향한 하느님의 지향을 닮은 듯 나그네의 마음까지 따듯하게 합니다.

 

일상의 생활에서 나는 오늘도 습관적으로 편을 가르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만 아닐 뿐 일상의 정신성이 온통 단절의 가시덤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창조물이 셀 수 없이 많은 것처럼 하느님을 드러내는 다양함의 넓이가 무궁무진할 터인데 나와 다른 것을 손쉽게 거부하는 습관에 젖어있음을 성찰해 봅니다. 단절의 현장을 회복시키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따라 다름을 보살피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출처: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4. 단절과 회복 | 가톨릭평화신문 (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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