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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2. 물과 은총

 

제가 속한 사도직 단체인 ‘하늘땅물벗’도 서로 마주 앉아 모이지 못한 것이 제법 오래되어갑니다. 무작정 교류를 줄이고 각자 홀로만 머물 수는 없다는 마음에 온라인을 활용한 ‘랜선 기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살갑게 인사 나누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기술을 활용해서 아쉬우나마 하느님을 찬미하며 마음을 나눌 기회였기에 많은 분이 참석하였습니다.

 

하느님 창조물과 함께하는 기도 모임이라는 목적에 맞게 첫 번째 기도 모임의 주제는 ‘물’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모임이었지만 자신이 경험한 물에 대하여 각자 묵상하고 그 느낌을 함께 나누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몇 분은 물에 떠내려갔거나 빠져서 허우적대던 어렸을 적의 기억 등 물에 대한 공포를 나누어 주셨고, 목마름의 기억, 어린 시절 물놀이의 추억 등 많은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물에 대한 첫 번째 느낌은 공기와 마찬가지로 특별할 것 없는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의 우물이나 계곡의 맑은 물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에서 그렇게 무상으로 있는 것이었죠.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는 공동의 것을 자기 것인 양 사취한 사기사건의 교훈이었는데, 지금은 물을 사 먹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을을 관통하던 작은 개울은 도시화와 함께 하수구가 되어 덮개가 씌워졌고, 산업용수로 많은 지하수가 사용되면서 맑았던 내는 마른 하천이 된 것을 목격합니다. 이제는 물을 대하면서 편안함보다는 긴장감, 보편적이라기보다 차별적인 것, 자연스러운 것이라기보다 가공적이라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물을 수소와 산소의 화학적 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로만 보는 패러다임을 벗어나면 정말 다양한 물의 의미와 가치를 보게 됩니다. 특히 성경에서 발견하는 다양한 물 이야기는 우리에게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의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예수님은 유다인들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명의 물로서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구원의 의미를 알려주십니다.(요한 4,7-14) 실로암의 물은 눈먼 사람에게 현실적 구원을 주는 도구가 되었고(요한 9,7), 물 위를 걷고(마태 14,23-33) 폭풍을 잔잔하게 하는(마태 8,23-27) 모습은 두려움을 이기는 주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또한, 수난 전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요한 13,5-14) 물은 사랑과 나눔 그리고 진정한 섬김을 보여 줍니다. 성체성사의 성혈을 이루는 포도주와 물은 하느님 안으로 일치되는 모든 피조물의 희망을 드러내고, 세례성사의 물과 성령을 통해 인간은 다시 태어납니다.(요한 3,5) 하느님의 창조물 중에서 주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역할을 물만큼 풍부하게 하는 것이 없을 듯합니다.

 

오늘 아침도 한 잔의 차와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단지 H₂O(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위로와 생명을 마셨음을 묵상해 봅니다. 저개발국 선교지에서 원주민과 함께 사는 선교사들은 지금도 마을에 우물을 준비해 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펌프가 놓이고 그곳에서 맑은 물이 솟구치면, 그것은 단순한 물질을 넘어 생명을 북돋우시는 하느님 은총이 쏟아지는 것임을 전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흐르는 물이 아까워서 세숫대야에 세수하고 물을 받아 설거지하신다는 어느 분의 말씀은 단순한 절약을 넘어 하느님의 은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이제는 꼭지를 틀어놓고 흐르는 물에 샤워하던 습관도 조금씩 바꿔가야 하겠습니다.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출처: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2. 물과 은총 | 가톨릭평화신문 (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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