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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12. 죽은 이들에게 가시어

삼월이 되면 어김없이 매화가 망울을 터뜨립니다. 개나리, 진달래가 그 뒤를 잇고 목련이 피었다가 마당을 어지럽힐 때쯤이면 온통 마을은 벚꽃으로 뒤덮입니다. 어느 시인이 ‘한 번도 꽃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 펑펑, 팡팡, 봄꽃은 핀다’고 노래한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어떤 것이라고 설명은 못 하더라도, 숨죽었던 들판이 봄꽃으로 차곡차곡 색을 입어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눈짓을 느끼기 충분합니다. 매년 봄꽃의 순서를 즐겨온 지도 수십 년이 되었는데 한두 해 전부터 그 차례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이 순서를 잊어버린 듯 뒤죽박죽 마구 뒤섞여 피는 것을 봅니다. 종전에는 한 달의 차이가 나던 개나리와 벚꽃의 개화가 2010년 이후에는 1주일로 줄어들었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니 저의 관찰이 잘못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지구를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인 ‘가이아’로 설명한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1919~ )은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재앙이 이미 막을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고 보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현 생태계가 견딜 수 있는 온도 상승의 한계를 2℃로 보고 있지만, 이미 시작된 온난화의 관성으로 지금 당장 모든 활동을 멈추더라도 1.5℃의 상승은 필연적이라고 합니다. 러브록은 30년 후인 2050년에는 적도 부근의 땅은 사막화로 인해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며, 머지않아 20%의 인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비관적 예언을 내놓고 있습니다. 미국 부통령이던 앨 고어(1948~ )는 대도시가 물에 잠기고 빙하는 사라지며 허리케인이 두 배나 증가하는 끔찍한 미래의 도래가 2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불편한 진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반신반의하면서도, 봄꽃의 순서가 엉망이 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비관적 세상의 전조는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사순 시기의 절정인 성주간을 맞으며 스위스 신학자인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1905~1988)의 성토요일 묵상에 마음이 와 닿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적 고통을 감내하셔야 했던 성금요일의 사건이 성부께 대한 성자의 자발적인 순종이었다면, 죽은 자들의 장소이자 망각으로 버려진 죽음의 상태인 ‘하데스’에 가신 성토요일은 온전히 버려진 상태로서의 순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의 절망적 죽음과 ‘함께 함’으로써 당신의 사랑 방식인 ‘자기 비움’(kenosis)을 최고로 드러내십니다. 교회는 이날 미사도 없이 제대포도 벗겨 두지만, 어떤 구원의 빛도 비추지 않는 어둠의 끝까지 가시어 잊힌 존재들과 함께하시는 주님은 창조계의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으시려는 모든 것을 향한 구원을 보여주십니다.

 

창조로 번성하던 지구의 시대는 저물었고, 이미 시작된 지구 생태계의 대혼란은 머지않아 종들의 멸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은 마음을 더욱 성토요일의 주님에 머물게 합니다. 물질적이며 인간적인 경험을 똑같이 우리와 함께하셨던 주님이 창조 세계의 절망적 순간에도 죄의 벌까지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민낯의 제대로부터 다가옵니다. 성토요일은 세상을 버린 하느님의 부재가 아니라 모든 창조물을 향하여 최고의 절망까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죽음의 끝에서 맞이하게 되는 파스카의 신비가 오늘의 세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준비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묵상을 이어가 봅니다.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출처: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12. 죽은 이들에게 가시어 | 가톨릭평화신문 (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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