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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11. 전기 없이 살기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 갑자기 아파트 전체가 정전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여겼던 전등이 꺼지고, 저녁 시간을 동반하던 티브이가 멈추었습니다. 냉장고의 음식물도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내일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휴대폰도 멈추고 컴퓨터를 통한 세상과의 연결도 끊긴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불안은 커지기만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전까지는 전기가 없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동생과 남폿불의 호야에 끼인 그을음을 닦는 것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이기도 했습니다.

 

군 소재지인데도 집마다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70년쯤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전기를 알고 산 것이 불과 50년밖에 안 되는데 어느새 우리의 일상은 전기에 포박되어 그것 없이는 옴짝달싹 못 하게 된 듯합니다. 비상시를 대비해 먹거리는 비축해 둘 수 있지만, 전기는 따로 저장할 방법이 없다 보니, 어쩌면 전기로 돌아가는 세상이 인간을 생존에 취약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인류에게 새로운 문명을 가져다준 전기이지만, 대규모로 소비되는 화석연료는 기후 위기를 초래하고 핵을 이용한 발전은 생명에 치명적인 대규모 재앙의 가능성을 안고 살게 하였습니다. 태양광과 풍력 등의 환경오염 없는 에너지가 보급되고 있지만, 온통 전기로 연결된 세상에서 아직 역부족입니다. 기후 위기와 핵의 위험을 지적하면서 한편으로 전기 사용을 늘려가는 것은 모순된 행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를 걱정하고 핵기술의 아슬아슬함이 하느님의 가치에 어긋난다는 의식을 갖는다면, 오늘도 종일 플러그에 온갖 것을 꽂아놓고 전기의 편리함에 묻혀 지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는 사순절 동안 단식을 실천하며 그 열매를 사랑으로 나눌 것을 권고합니다.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있어서 단식은 주님의 수난을 기억할 뿐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하는 살아있는 체험을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앙의 눈은 파헤쳐지고 빼앗기는 자연을 가난한 자로 인식하고 주님의 구원이 인간을 넘어온 창조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면, 잠깐의 시간이나마 전기나 화석연료와 단절하는 에너지 단식을 통해 교회가 지향하는 단식의 의미를 이 시대에 살아있는 것으로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어느 마을은 ‘전기 없는 날’을 정해서 모든 사람이 플러그를 뽑고 전등을 끈 채 하루를 함께 한다고 합니다. 사순절 한 날 단식을 대신해 전기 없이 살기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한 끼니의 시간인 반나절 동안만 전등과 라디오를 켜지 않고 휴대폰은 꺼놓고 걸어서만 다녔던 소박한 시도였지만, 도시에서 사막을 살아가는 듯한 새로운 체험이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본당에서 ‘전기 없는 미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기가 보급되기 이전의 교회가 그랬을 것처럼 햇빛에 의지하고 초와 등으로 부족한 부분을 밝히며, 자연의 바람이 성당을 채우고, 육성만으로 기도와 찬송이 울려 퍼지는 그런 미사를 생각해 봅니다. 문명을 거슬러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전기조차 구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 그리고 전기를 생산하고 버려지는 핵과 온실가스에 의해 피폐해지고 있는 지구를 기억하는 미사이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가 인간뿐 아니라 온 지구 공동체의 구원을 향한다는 것을 느끼며 모든 창조물과 함께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미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11. 전기 없이 살기 | 가톨릭평화신문 (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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