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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세이

새로운 회심을 위한 용기를 발견할 수 있는 축복받은 시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하였던 팬데믹(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이 어느날 갑자기 현실로서 우리 가운데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구적 개발을 주도해 오며 디지털 시대에 까지 이르게 된 인류는 불현듯 다가온 바이러스에게 일터와 거리와 광장을 내어주고, 교회마저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불안과 공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던 올 해 3월 27일 어둠이 깔린 저녁, 역사에 남을 성체 강복(Urbi et Orbi)을 위하여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의 계단을 홀로 올라가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뒷모습은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근대 이후 인간 이성의 폭주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자연을 인간과 연결된 생명으로 이해하기보다 오직 인간의 삶을 위한 물질적 도구로 취급했습니다. 무절제한 자원 개발, 가공할 핵 개발, 생명 조작, 네트웍을 통한 대중 조작 등등 거칠 것 없었던 인간의 질주가 어느 순간 생명인지 비생명인지도 분명치 않은 바이러스에 의해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맹목적 질주를 계속하던 세계가 속도를 줄이지 않을 수 없게 된 지금, 교종은 이제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삶에 관한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지를 읽어야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돌풍을 만난 배 위에서

 

이제 죽게 되었구나”(마르 4,38)라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하고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라고 교종은 권고하십니다. 돌풍은 개인적 안락함과 물질적 풍요를 따르느라 겉포장만으로 이루어진 우리 신앙의 민낯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을 물으시는 주님의 말씀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 모두의 양심을 성찰하게 한다는 교종의 말씀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이 시대의 선교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교회 공동체의 성찰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신앙의 눈으로 팬데믹을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은유적 상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적으로 세계를 공포로 몰고 가는 전염성 강한 질병으로서 팬데믹은 이 시대의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 기아, 질병 뿐 아니라 수단을 가리지 않는 물신주의, 소비주의, 쾌락주의, 인간 중심적 개발주의 등으로 우리에게 현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성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방역도 갖추지 못한 채 우리 삶 안에 현존하고 있는 모든 악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름 강변과 백로
전염성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방역도 갖추지 못한 채 우리 삶 안에 현존하고 있는 모든 악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신적인 측면과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세계를 병적 상태로 몰아넣는 팬데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이 시간이야 말로 복음이 제시하는 새로운 회심을 위한 용기를 발견할 수 있는 축복받은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이 단지 하느님을 머리로 믿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내 인격 전체를 주님과 일치시키는 믿음은 그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이라는 확신과 함께 그분의 십자가를 껴안는 것임을 교종은 강조하십니다. 만남이 극도로 제한되면서 공동체로서 느끼던 하느님을 향한 예배의 기쁨도 제한된 팬데믹의 시기가 오히려 우리 안에 아무런 의식 없이 존재하던 정신적 영적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그로부터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더욱 의탁하며 공동체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은총의 시간으로 이끌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출처: 3/27일 프란치스코 교종의 ‘성체 강복 강론’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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