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내 안에]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는 성탄
요즘 영수 형님은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15년을 함께 가족으로 지냈던 반려견 재롱이를 얼마 전 별나라로 보낸 후, 한결같이 반겨주던 녀석이 없는 집이 너무나 쓸쓸합니다. 서로 건널 수 없는 존재의 간격이 있는 것 같았지만, 사람의 마음마저 알아차리며 위로를 주던 기억이 되살아날 때 마다 나를 기억하고 따르며 공감하던 순간들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었는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재롱이의 영혼을 위해 신부님께 미사라도 부탁드려 보고 싶지만, 인간이 아니면 아직 그 예배에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냥 안타까운 마음은 가슴에 묻고 언젠가 하느님 안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기도로 대신할 뿐입니다.
성당 마당 한 편에 놓인 구유를 바라보다 문득 아기 예수께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양들을 보았습니다. 호적 조사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던 날, 마리아는 해산이 임박했지만 사람들은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갈 곳이 없었던 엄마는 짐승들의 거처에서 아이를 낳고 외양간 한 쪽에 놓여있던 구유에 뉘여 놓았습니다. 아마도 살을 취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을 제일 먼저 목격한 것은 그 외양간에 있던 짐승들이었을 것입니다. 천사들로부터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목동들과 함께 소와 양과 뭇짐승들이 예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이 어찌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습니까?
하느님의 구원이란 오직 히브리 민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에, 이방의 민족인 동방의 현자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세상을 구원하실 분의 탄생을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은 별의 인도로 먼 길을 떠났고 마침내 아기 예수가 있는 곳 위에 별이 멈췄습니다. 성경은 동방의 현자들이 기뻐하며 집에 들어가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다고 전합니다. 별은 사랑으로 충만한 하느님이 물질을 취해 세상에 오신 것을 인간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은 피조물이 되신 주님의 탄생이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지구의 모든 피조물을 포함한 우주 전체의 구원 이야기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시 별나라로 간 재롱이를 생각해 보며, 그동안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예배가 온통 인간만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피조물의 살과 원소를 취해서 세상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려 오신 하느님의 신비를 생각하면서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는 예배를 생각해 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강조하신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의 찬가’가 떠오릅니다. “저의 주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특히 형제인 태양으로 찬미받으소서…/ 누이인 달과 별들로… /형제인 바람과 공기로… /누이인 물로… /형제인 불로 찬미받으소서…”(『찬미받으소서』 87항)
홍태희(하늘땅물벗)
수원주보 제1976호